“솔직히 저희가 (테라·루나에 대해) 잘못 판단했습니다. 암호화폐가 얼마나 위험한 자산인데 그것을 모르고 또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은 피해자가 맞지만 해시드가 피해자는 아닙니다. 다만 탈중앙화 생태계에서는 개인이 그만큼 더 투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김서준(사진) 해시드 대표는 1일 서울경제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디센터와 만나 “규모가 다를 뿐 우리도 많은 테라·루나 투자자 중 하나였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가 국내 언론과 만난 것은 5월 테라·루나 폭락 사태 이후 처음이다. 그간 김 대표는 공개 석상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렸으며 이번 인터뷰 역시 취재진이 서울 역삼동 해시드 본사를 찾아가 오랜 시간 그를 기다린 끝에야 이뤄졌다.
해시드는 국내 최대 블록체인 벤처캐피털(VC)로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와 쌍둥이 코인 루나(LUNA)의 초기 투자자이자 강력한 지지 세력으로 꼽혔다. 해시드의 입지가 워낙 독보적이다 보니 일반인들도 추종 투자했는데 이 때문에 테라·루나 사태 이후 해시드도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그간 테라·루나를 치켜세웠던 김 대표는 어떤 해명도 없이 공식 석상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투자자일 뿐인데 먼저 입장을 밝히는 게 맞나 싶었고 너무 예민한 시국이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시간 중 상당 부분이 김 대표의 해명으로 채워졌다. 우선 사태 직전까지 일부 루나를 현금화했다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와 관련해 그는 “폭락 이전 스테이킹 리워드를 매도한 것이 정말 모럴해저드냐”며 “디페깅 당시 보유하고 있던 전체 루나 3000만 개 중 묶여있던 2200만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700만 개는 얼마든지 팔 수 있었지만 테라의 붕괴가 가속화하는 데 직접 가담하고 싶지 않아 팔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루나·테라를 적극 홍보해 일반인도 투자에 나서게 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생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한 것은 절대 선동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김 대표가 2019년 해시드 공식 블로그에 게재한 ‘루나의 적정 가격은 얼마일까’라는 글을 올리며 투자자들에게 장밋빛 희망을 안겼다는 점, 사태 초기 시간이 지나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이 확보되면 UST 페깅은 1달러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힌 점 등을 들면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대표는 테라 생태계에 대해 해시드의 판단이 잘못됐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시종 일관 해시드가 수많은 투자자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암호화폐 투자는 ‘리스크(위험)’가 크며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이 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테라 생태계의 많은 개발자들을 진심으로 지지했다”며 “‘해시드는 ‘스킨 인 더 게임’을 한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스킨 인 더 게임’이란 ‘자신이 책임을 안고 직접 참여한다’는 뜻으로 ‘블랙스완’으로 유명한 작가 나심 탈레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김 대표 스스로 테라를 확신했기에 투자(참여)했다는 얘기다. 또 “해시드는 판단을 잘못한 것이지 피해자는 아니다”라며 “탈중앙화 생태계에서는 개인이 그만큼 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테라 생태계는 완전히 끝났다”고 했다. 현재 해시드 포트폴리오에서 테라와 루나를 제외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루나2가 나왔지만 우리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며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테라2 생태계를 지지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테라 사태와 별개로 블록체인 생태계는 간다(계속된다)”며 “연말쯤 희망적인 이야기로 인터뷰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시드가 말하는 새 희망을 시장이 또다시 받아들이는 과정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 홍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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