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율규제 기구인 암호화폐거래소협회(JVCEA)는 정부로부터 규제 권한을 위임 받아 가상자산 사업자의 영업은 물론 거래소들의 상장 종목까지 결정하는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다만 규제가 강해지면 그만큼 시장 활성화의 발목을 잡는 만큼 최근에는 반작용으로 JVCEA의 힘을 빼는 조처도 나오는 모습이다. 일본 사례를 통해 한국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DAXA·닥사)가 자율과 통제의 적절한 균형을 갖추도록 시스템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2018년 JVCEA를 출범해 자국 영업 거래소를 관리·감독한다. JVCEA 회원사로 등록된 사업자는 40곳에 달한다. JVCEA는 일본 자금결제법상 자율규제 단체 인가를 받은 공인 기구로 금융 당국 수준의 막강한 규제 권한을 행사한다. 암호화폐 업계의 빠른 변화 속도에 맞춘 정책 대응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JVCEA를 통한 자율규제로 업계를 일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일본 당국의 판단이 작용했다.
일본에서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진행하려면 JVCEA 1종 회원에 합류해야 한다. JVCEA는 심사를 통해 협회가 발급하는 가상화폐 매매 라이선스를 획득한 사업자를 제1종 회원으로, 라이선스 취득을 진행하고 있는 사업자를 제2종 회원, 그 외 사업자를 제3종 회원으로 분류한다. 협회 차원에서 거래소 공동으로 진행하는 상장 심사 결과도 개별 거래소의 암호화폐 상장 여부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일본은 JVCEA의 최종 허가를 받은 암호화폐만을 상장하는 ‘화이트 리스트’ 제도를 통해 회원 거래소의 상장 결정을 엄격히 관리한다. JVCEA는 화이트 리스트 요건을 매우 까다롭게 제시해 현재까지 65종의 암호화폐만 화이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JVCEA의 엄격한 상장 기준이 일본 암호화폐 시장 활성화를 방해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최근에는 ‘그린 리스트’를 도입해 상장 기준을 완화하는 모습도 관측된다. 지난해 JVCEA는 거래소가 협회의 상장 심사 없이도 상장할 수 있는 암호화폐 명단인 그린 리스트를 공개했다. 그린 리스트 등록 조건으로 정한 △3개 이상의 회원사(거래소)에 상장 △1개 회원사에 상장된 기간이 6개월을 경과 △협회가 별도 조건을 제시하지 않은 경우 △부적절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를 모두 충족해야 그린 리스트에 포함된다. 지난달 말 기준 그린 리스트 암호화폐는 비트코인캐시(BCH), 라이트코인(LTC), 리플(XRP) 등 총 22개다.
막강한 규제 권한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자율규제 기구로서 작동하는 JVCEA와 달리 국내 닥사의 경우 아직까지 그 역할이 불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닥사는 협회 차원의 암호화폐 상장·상장폐지 기준을 세우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기준 제시에 그칠 뿐 개별 거래소의 상장·상장폐지 과정에는 개입이 불가능하다. 권오훈 차앤권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거래소들이 닥사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할 때 얻는 이득과 어겼을 때의 손해 모두 없다”며 “협회를 법적으로 인정해 근거를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자율규제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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