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바이낸스·코인베이스 제소로 가상자산 시장에 ‘증권성 판단’ 피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SEC의 증권 분류를 피한 나머지 가상자산도 안심하긴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SEC가 두 거래소를 제소하는 과정에서 상장된 가상자산을 전수조사했을 가능성은 낮다며 SEC 기소문에 포함되지 않은 가상자산이라도 추후 증권으로 판단될 여지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업계와 금융당국도 SEC의 추가적인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 공통 기준 수립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8일 업계에 따르면 SEC는 가상자산 19종을 새롭게 증권으로 규정하고 이들 가상자산의 거래를 지원하는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를 6~7일 연달아 미등록 증권 판매 등의 혐의로 제소했다.
SEC 기소문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이들 거래소의 스테이킹 서비스다. SEC는 코인베이스 스테이킹 프로그램의 증권법 위반 혐의에 대해 별도의 항목을 두고 7장에 달하는 분량을 할애해 지적했다. 게리 겐슬러(Gary Gensler) SEC 위원장은 지분증명(PoS) 방식 합의 알고리즘이 적용된 모든 토큰과 스테이킹 서비스에 증권성이 있고 SEC의 관리감독 하에 놓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코인베이스는 지난 2019년 11월부터 △테조스(XTZ) △코스모스(ATOM) △이더리움(ETH) △카르다노(ADA) △솔라나(SOL) 등 가상자산 5종에 대한 스테이킹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SEC는 이 가운데 코스모스와 카르다노, 솔라나 등 3종목을 증권으로 지목했다.
다른 가상자산과 달리 이더리움과 테소즈는 증권으로 분류하지 않은 변칙적인 결정을 두고 일각에선 SEC의 증권성 판단 기준이 불명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SEC가 새롭게 증권으로 판단한 19종이 가진 공통적인 증권성이나 일관된 판단 기준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이 때문에 SEC가 두 거래소를 제소하기 전 이들 거래소에 상장된 가상자산을 전수조사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전체 가상자산 가운데 증권성이 특히 두드러지는 몇몇을 대표적인 케이스로 부각시켰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SEC가) 1차적으로 몇 가지 시범 케이스를 꼽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수호 법무법인 르네상스 변호사도 “보통 검찰 등이 기소를 할 때는 전수조사를 하기 보다는 대표적인 몇 가지를 선정해서 지목한다”며 “이번에 증권으로 판단된 가상자산들의 경우 거래 규모나 미국인 거래 비중 등을 따져 지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SEC의 이번 증권성 판단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미지수다. 정 센터장은 “SEC의 증권에 대한 기준과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증권이라고 규정하는 기준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딱 이렇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바이낸스·코인베이스 상장 가상자산에 대한 SEC의 추가적인 증권 분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는 전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거래소로 이들 거래소에 상장된 가상자산의 상당수가 국내 거래소에도 상장됐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증권성에 대한 SEC의 규제가 갈수록 삼엄해지면서 국내도 증권성 판단 기준의 합의점을 찾기 위한 논의에 고삐를 당겼다. 국내 5대 거래소로 이뤄진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닥사)는 지난 2일 금융감독원·거래소 관계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개별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을 위한 세부 사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상장폐지·내부통제 등 거래소 공통의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온 닥사가 논의에 참여하면서 증권성 판단을 위한 거래소 범용 체크리스트를 마련하기 위한 본격적인 채비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닥사 관계자는 “간담회엔 닥사 당국 담당자가 참석해 공통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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