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대구, 서울, 인천까지 지자체가 블록체인 사업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일반 시민은 물론 업계의 반응마저 차갑다. 트렌드 따라잡기에 급급하기보다 지자체의 특색을 살려 사업의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천시는 지난달 인천 송도에서 열린 글로벌 블록체인 인천 컨퍼런스(GBIC)에서 블록체인 기업의 홍보 부스를 운영했다. 부스마다 놓인 큐알(QR)을 수집하면 경품 추첨에 응모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인천시 자체 부스도 야심차게 차렸지만 경품 수령을 위한 질의응답이 대부분이었다. 사업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블록체인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인데도 참가자 대부분은 정부 관계자였다. 업계의 냉랭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부산시가 지난해 개최한 ‘블록체인 위크 인 부산(BWB) 2022’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당시 블록체인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부산시의 포부에 비해 볼거리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대구시는 지난 2월 민간 주도 원화거래 디지털자산 거래소를 설립하겠다고 밝혔으나 두 달 만에 철회했다. 서울시도 지난 7월 열린 ‘서울 웹3 페스티벌(SWF2023)’에서 해커톤을 열었으나 수상자에게 상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이번 GBIC에서 드러난 업계의 실망감이 하루이틀 새 쌓이지 않았음을 추측케 하는 에피소드들이다.
인천시가 공개한 중장기 사업 로드맵도 무미건조하다. 인천시가 주력을 둔 분산 ID(DID, Decentralized Identifiers) 기술과 블록체인 물류 관리 서비스는 부산시가 이미 추진했다. 규제도 개선한다지만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돼 여러 규제 혜택을 누린 부산시조차 성과가 미미한 상황에서 인천시가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행사에 참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인천은 부산과 겹치는 블록체인 사업이 많아서 아쉽다”며 “짧은 시간 안에 (사업들을) 마련하다 보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보다) 형식을 갖추는 데 집중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지자체들의 행보 자체는 업계에 긍정적이다.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려는 가운데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자금 조달 등의 측면에서 활로를 모색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지자체의 특색이다. 특색이 없으면 기업도 굳이 해당 지역을 찾아가 사업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인천시는 얼마든 지리적 이점을 활용할 수 있다. 송도만 해도 인천공항과 가깝고 글로벌 기업이 입주해 해외 접근성이 좋다. 국내외 블록체인 기업이 인천에서 모든 업무가 가능하도록 비즈니스 인프라를 구축하면 굳이 서울까지 나가지 않아도 된다. 업계 관계자는 “(송도는) 귀국 30분 내로 업무 미팅이 가능하고 국경의 제한이 없는 블록체인과 결이 잘 맞는다”며 “접근성이라는 이점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전했다.
일본 홋카이도 후타미군에 위치한 야마코시가 지역 특색을 활용한 대표 사례다. 이 곳은 지진으로 한때 총 인구가 800명에 불과했다. 야마코시 주민들은 마을을 재건하기 위해 지역 명물인 ‘비단잉어 NFT’를 발행, NFT 보유자(홀더)를 디지털 주민으로 인정하는 특전까지 제공했다. 덕분에 최근 야마코시 인구는 1만 명까지 늘어난 상태다. 지역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의 정서와 신기술이 만나 지방 소멸 극복의 힌트를 준 사례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항공의 주요 거점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외국인에게 개방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을 유치해 블록체인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특색이라곤 없이 무색무취한 국내 지자체들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인천도 야마코시를 모범 사례로 언급했음에도 벤치마킹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핵심은 정책의 알맹이다. 지자체들은 매번 똑같은 블록체인 ‘특화’ 사업이 아니라 ‘특색’ 있는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야마코시처럼 전통을 살리려는 일반 시민의 의지, 혹은 지자체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블록체인 사업가들이 찾아오도록 유인책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수요 없는 공급은 낭비에 불과하다.
- 최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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