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가상자산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 초 2만 달러대를 회복하며 극적인 반등을 이룰 것으로 기대됐던 비트코인(BTC)은 여전히 2만 달러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전세계 1·2위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를 제소하는 등 가상자산 업계를 에워싼 규제 압박은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거래량이 쪼그라든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내 거래소들은 이같은 전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르고 나홀로 약진해 눈길을 끌었다. 가상자산 데이터 제공 업체 씨씨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거래소 업비트의 거래량은 지난 7월 전 달 대비 42.3% 급증해 처음으로 코인베이스를 제치고 전세계 2위 거래소로 올라섰다. 글로벌 점유율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빗썸·코인원 등 다른 국내 거래소들 역시 각각 27.9%, 4.72% 달하는 상승세를 기록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을 자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상은 그 반대다. 지난해 가상자산 급락 이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여전히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가상자산을 무더기 상장하는 자구책을 내놓고 주요 알트코인들의 거래 수수료를 무료로 전환하는 등 떠나가는 투자자들을 붙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제살 깎는 노력에도 국내 2위 빗썸은 올해 2분기 34억 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세계 2위까지 올라선 국내 거래소의 성과가 실질적인 성장보단 ‘갈라파고스화' 된 국내 시장의 현실을 가리킨다는 반증이다. 지난 2021년 전세계 최초로 도입된 트래블룰은 국내 시장과 글로벌 시장 사이 큰 장벽을 세웠다. 중국과 더불어 전세계에서 유이하게 돈버는게임(P2E)의 출시가 금지된 국가이기도 하다. 해외에선 활발한 기관투자자의 가상자산 투자 역시 어려워 다른 거래소들과 달리 개미들이 주도하는 묻지마 식 투자 양상도 국내 시장의 특징이다. 이처럼 글로벌 시장으로부터 유리된 결과가 거래량 ‘역행’으로 나타난 것이다.
여전히 많은 블록체인 기업들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활발한 가상자산 거래 시장과 IT역량을 쌓아온 인재풀을 갖춘 한국은 분명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부정 상장과 가상자산 서비스 ‘먹튀’ 논란, 흐지부지 된 각종 정부 단위 사업 등 과제가 산재하면서 빠르게 성장하는 글로벌 크립토 허브들에 뒤처지고 있는 사실도 부정하기 힘들다. 산업 육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규제 또한 국내 시장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산업이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거래량에 비해 부실한 경쟁력을 갖춘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머리를 맞댈 시간이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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