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에서는 이드덴버 2024에서 특히 이목을 끌었던 이벤트, 국내에 소개할 만한 프로젝트들을 담아봅니다.
메인 행사장에서 기억에 남았던 경험 중 하나는 IYK(If You Know)의 BUIDLShop 이벤트였습니다. 메인 행사장에 마련된 이 팝업 스토어는 독특한 체험형 퀘스트 시스템을 통해 참가자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행사장에 등록을 마치면 NFC 칩이 내장된 목걸이 뱃지를 받게 되는데, 이를 핸드폰으로 태그하면 IYK 웹사이트로 연결되어 퀘스트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면 $BUIDL 코인을 획득할 수 있고, 이를 BUIDLShop에서 다양한 한정판 머천다이즈와 교환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퀘스트는 디지털과 물리적 경험을 아우르는 다양한 미션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를 통해 이드덴버의 곳곳을 누비며 새로운 발견을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완료한 퀘스트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BUIDL 코인은 참여에 대한 보상 체계를 게이미피케이션한 사례로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퀘스트 참여와 $BUIDL 토큰을 받기 위해서는 Clave 지갑을 요구했는데, 제가 시도했던 당시에는 알 수 없는 API 문제로 인해 지갑 다운로드가 어렵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Clave 지갑이 필요한지도 몰라 부스 직원에서 질문을 하고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시스템이 다소 복잡하고 설명이 부족해서 사용 방법을 익히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더욱 직관적이고 편리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풀어야 할 숙제임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였습니다.
인상 깊었던 사이드 이벤트 중 하나는 탈중앙화 물리 인프라 네트워크(DePIN)에 대한 'DEPIN DAY'였습니다. 그 중 io.net의 세션에서 DePIN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례를 볼 수 있었는데요. 발표자는 "GPU는 정보화 시대의 기름"이라는 말로 세션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인공지능(AI) 서비스의 전례 없는 급격한 성장으로 GPU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거죠. 실제로 허깅페이스에는 약 35만 개의 오픈소스 AI 모델이 등록되어 있고, AI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연산 요구량은 18개월마다 10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AI 모델 사용 비용 역시 크게 오르고 있는데, 이는 곧 GPU 공급 부족 문제로 직결됩니다. io.net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프로젝트입니다. 전 세계에 분산된 유휴 GPU 자원을 모아 AI 개발자들에게 저렴하고 효율적인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비전입니다. 현재 6만개 이상의 GPU를 확보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세계 최대 규모의 분산형 GPU 클라우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제시했습니다. io.net 같은 DePIN 프로젝트를 보며 블록체인 기술이 AI 혁신을 뒷받침할 중요한 인프라로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DEPIN DAY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대목은 'DePIN & AI: A Match Made in Heaven' 세션에서의 패널 토론이었습니다. 이 세션에는 Filecoin(탈중앙 스토리지), Aether(탈중앙 GPU 클라우드 인프라), Syntropy(탈중앙 실시간 데이터 스트림), Gensyn(탈중앙 머신러닝 컴퓨팅)에서 패널로 참여했으며 AI와 DePIN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무엇보다 DePIN이 거대 중앙화 AI 모델보다는 소규모 사용 사례에 특화된 로컬 AI 모델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잠재력이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적절한 인센티브 설계와 상호운용성 확보입니다. 특히 AI 개발에서 데이터, 그 중에서도 희소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을 크립토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크립토의 정수 중 하나가 바로 인센티브 메커니즘이라는 점에서, 이를 잘 활용한다면 성공적인 부트스트래핑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탈중앙화 기술을 통해 데이터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면서도 AI에 양질의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이 제한되는 등의 데이터 지역성 이슈가 있는데, 분산 컴퓨팅을 활용하면 이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편 Gensyn의 벤 필딩g은 AI의 미래가 결정론적이고 명령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인간의 추론과 유사한 확률론적 모델로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게임, 의료, Autonomous Economic Agent(지갑을 가지고 자율적 행동이 가능한 지능형 에이전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와 DePIN의 혁신적 활용 사례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데이터 무결성 확보, 분산 하드웨어 자원을 활용하면서도 지연 시간이 짧은 AI 서비스 제공 등이 DePIN의 숙제로 꼽혔습니다. 그럼에도 AI와 블록체인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영역이 많아 보였습니다.
사이드 이벤트 “Thank You Satoshi, Whoever You Are”에서는 비트코인을 주제로 한 네트워킹 파티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맥주 한 잔을 주문한 후 IPOR랩스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대런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는 비트코인의 가능성을 10년도 전에 보고서 업계에서 일해왔던 OG였습니다. 그와 나눈 대화에서 그가 이끄는 IPOR랩스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IPOR랩스의 목표는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 시장에 안정성과 효율성을 더하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IPOR(Inter-Protocol Offered Rate)'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재 DeFi 시장에는 메이 DAO, 아베, 컴파운드 등 다양한 렌딩 프로토콜이 존재합니다. 각 프로토콜마다 대출 및 예금 금리가 다른데, IPOR은 전통 금융 시장의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지표로서 탈중앙화 금융(DeFi) 시장의 기준금리를 설정하려는 시도입니다. 주요 DeFi 프로토콜들의 금리를 종합해 산출되는 IPOR은 변동성이 큰 DeFi 시장에 안정적인 벤치마크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IPOR기반으로 금리 리스크를 헷지할 수 있는 파생상품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변동금리 대출자는 IPOR 금리 스왑을 통해 고정금리로 전환함으로써, 시장 금리 상승에 따른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고정금리 예금자는 변동금리로 스왑하여 시장 금리 하락 시에도 일정 수준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겠죠. IPOR 기반의 금리 스왑, 선물 등 다양한 파생상품을 통해 시장의 효율성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IPOR Labs는 탈중앙화된 거버넌스를 통해 DeFi 시장의 공공재로서 IPOR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IPOR의 산출 로직과 활용 방안이 모두 커뮤니티에 의해 투명하게 결정되고 발전되는 것이죠.
저는 대런과의 대화에서 DeFi 시장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러한 기반 인프라의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전통 금융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을 살려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금융 시스템을 만드는 것. 또한 이런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빌딩하는 CEO와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고, 만약 10억원이 있다면 어떤 디파이 전략을 쓸 것인지 물으며 웃을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이 이드덴버의 진정한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편에서 이어집니다.>
- 덴버=임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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