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코인부터 반북거래를 솎아내는 채굴방식, 김정은 우주코인, 가즈아(to the Moon)까지…
모두 북한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대상으로 한 암호화폐 업계의 패러디다.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김 위원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제1권력자로 등장한 이후 독특한 머리모양과 함께 NBA 농구스타 출신 데니스 로드먼을 북한으로 부르는 등의 행보를 펼치면서 이미 할로윈 데이의 단골 분장 대상이 되는 등 서브컬처에서 패러디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를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놓칠 리 없었다. 더욱이 거래 익명성이 특징인 암호화폐는 폐쇄적인 북한체제와 맞닿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오면서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그동안 김 위원장과 북한을 대상으로 한 패러디가 여러 차례 나왔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지난해 만우절 공식 블로그를 통해 “이더리움의 채굴 방식을 작업증명(PoW)에서 권위증명(PoA)으로 바꾸겠다”며 “곧 비탈릭증명(PoV)을 발표하고 평양과 협력해 주체 사상에 이익이 되지 않는 거래를 판별할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올해 만우절에는 중국의 한 북한 전문 여행사가 북한 관광용 암호화폐 ‘고려코인’을 발행했다는 농담을 시도했다.
아예 김 위원장과 북한 정권을 모티브로 한 패러디 암호화폐도 등장했다. 스페이스킴(SpaceKim)이라는 이 풍자 코인은 홈페이지까지 마련해 두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달을 향하는 우주비행사 킴’(SpaceKim to the Moon)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우주복을 입은 김 위원장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게시돼 있다. 개발팀으로는 김 위원장을 비롯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김일성 주석이 전 최고경영자(CEO)로 소개됐다. 일론 머스크를 패러디한 ‘일웅 마스그’, 비탈릭 부테린을 본뜬 ‘버털링’과 함께 김 위원장의 친구로 알려진 데니스 로드먼 등이 스페이스 킴의 어드바이저로 활약하고 있다.
스페이스킴의 슬로건에 등장한 ‘투 더 문’이라는 표현은 영어권 국가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가격 상승을 기원하는 문구다. 한국의 ‘가즈아’와 비슷한 용례다.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북한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자 국내외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투더문’을 ‘문 대통령에게로’라는 의미로 패러디하기도 했다.
남북정상 회담으로 애먼 코인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날 대부분의 암호화폐가 상승세인 가운데 코인마켓캡 기준 시가총액 76위인 ‘레드코인’(RDD)이 오후 4시30분 기준 전일 대비 27.41% 급등한 0.009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국내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는 ‘김 위원장의 영향으로 빨간 코인이 오른 게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북한과 암호화폐의 연관성은 단순히 패러디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북한이 지난 수 년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아 국제사회가 강도 높은 경제 제재에 나서자 북한 정권이 자금 조달을 위한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선택했다는 시각이다. 리실라 모리우치 전 미국 국가안보국(NSA) 동아시아태평양 사이버안보담당관은 지난달 1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보낸 이메일에서 “북한이 지난해 채굴이나 해킹 등으로 취득한 암호화폐는 최소 1만1,000여 개로 추정된다”며 “지난해 12월 비트코인 가격이 최고치였을 때 현금화했다면 가치는 2억1,000만 달러(약 2,260억 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사이버안보 전문가 애슐리 선이 “라자루스 등 북한 정권의 후원을 받는 것으로 의심되는 해킹 집단이 비트코인 거래소를 공격했다”고 했다.
특히 익명성을 강화한 다크코인이 북한의 표적이 됐다는 시각이 있다. 지난 1월 미국 보안업체 ‘에일리언볼트’는 모네로(XMR)를 채굴해 자동으로 북한 김일성대학 서버에 송금하도록 지시하는 악성 코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해커가 사용한 김일성대학 서버 암호는 김정은 위원장의 이니셜과 같은 ‘KJU’로 알려졌다. 이에 일본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체크는 자금 세탁을 우려해 모네로를 포함한 지캐시(ZEC), 대시(DASH) 등 다크코인의 거래 지원을 중단했다. 코인체크는 지난 1월 5,800억 원 규모 암호화폐 넴(XEM)을 해킹당했으며 국가정보원은 이를 북한 소행이라 지목했다.
/황보수현 인턴기자 soohyeonhb@decenter.kr
- 황보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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