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블록체인식 분배정의…부지런한 개미에서 똑똑한 배짱이로’(▶바로가기 클릭)에서는 노동소득 시대가 저물고 있는 지금 블록체인이 어떻게 자본소득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소개했다. 이번 글에서는 블록체인이 여는 새로운 금융의 관점에서 ‘신용창출’이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사전에서 ‘신용’의 정의를 찾아보자.
크게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사람이나 사물이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하지 아니함. 또는 그런 믿음성의 정도라고 정의한다. 다른 하나는 경제 용어로 거래한 재화의 대가를 앞으로 치를 수 있음을 보이는 능력이다.
결국 신용에는 ‘믿음’이라는 심리적인 것과 ‘돈을 낼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경제적인 것이 담겼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신용’이라는 단어를 쓸 때도 두 가지 의미가 혼재된 경우가 많다.
지난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이 신용을 기반으로 집을 사고 자동차를 사고 물건을 산다. 돈뭉치를 들고 가서 물건을 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또 모아놓은 돈만으로 당장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돈이 있어도 신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 신용 대출을 받았다는 것은 은행이 ‘큰돈을 빌려줘도 차분히 갚을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돈을 갚을 수 있는 ‘지불’ 능력에 대한 믿음이 곧 신용인 셈이다.
현재 정부의 허가를 받고 신용을 창출해 돈을 빌려주는 곳은 금융기관이 유일하다. 그 신용의 밑바탕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은행에 한 푼 두 푼 맡긴 예금이 놓여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예금을 자산으로 신용을 창출할 때는 돈을 맡긴 예금주가 아니라 소수의 은행 관계자가 결정에 참여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면 지금도 이런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리먼 브라더스 파산이 많은 이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금융기관이 파산에 이르는 과정까지의 모든 의사결정을 내렸지만, 책임은 전체 사회가 부담하는 걸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불합리하다”는 군중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수많은 대안적 실험이 등장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사토시 나카모토였고, 그가 한 실험이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만든 것이다.
사토시의 실험은 ‘왜 금융 의사결정을 중앙 집권화된 소수에게 맡겨야 하는가’, ‘왜 소수가 금융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대부분 이익을 독점하나’, ‘왜 이익은 소수가 독점하는데 실패에 대한 책임은 모든 사람이 지는가’라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사토시는 비트코인의 첫 번째 블록인 제네시스 블록(Genesis Block)을 만들면서 이를 의미심장하게 풍자했다. 제네시스 블록에 기록을 새기면서 인용한 신문기사는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타임즈, 2009년 1월 3일, 은행을 위한 두 번째 긴급 구제 방안 발표 임박)이었다. 정부와 은행이라는 중앙집중화된 권력이 독점해 온 통화정책과 신용창출 정책이 실패했는데, 그 책임을 모두가 함께 지는 상황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제목이었다. ‘블록체인을 통해 중앙집중화된 금융의 모순점을 풀어내겠다’는 사토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각국 정부는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법정화폐, 본원통화를 발행하고 관리하게 한다. 시중은행을 통해 신용을 창출하고 통화량을 늘린다. 이를 지불준비금 제도라고 한다. 가령 한국은행은 시중은행이 고객들로부터 100만큼의 예금을 받으면 이중 7%를 지급준비금으로 받아놓는다. 그리고 나머지 93을 고객들에게 빌려주도록 한다. 자기 돈이 아닌 고객이 맡긴 돈을 빌려줌으로써 쓸 수 없는 돈을 쓸 수 있도록 한 셈이다. 이른바 신용창출이다. 법정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신용창출 체계는 자본주의의 핵심이기도 하다.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는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공고하게 구축된 신용창출 메커니즘을 벗어나 탈중앙화하겠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화폐가 디지털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디지털 자체만으로 지불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은 금융 거래뿐 아니라 모든 ‘가치’ 있는 것을 거래하고 기록하는 데 유용하다. 또 블록체인 기반의 비트코인은 디지털 화폐로 인식된다. 사람들의 ‘신뢰’를 기반으로 가격이 오르면서 추가적인 신용을 창출해 내고 있다. 사람들의 신뢰와 믿음만큼 가격이 오르면서 새로운 신용을 만드는 셈이다.
비트코인은 늦은 거래, 높은 비용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아 온전한 지불수단으로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미래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미리 사 두자’는 수요도 상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고 알아야 할 점은 신뢰를 부여하고, 신뢰를 만들어내는 곳이 꼭 중앙 집중화된 기관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탈중앙화된 커뮤니티의 신뢰를 기반으로 신용을 부여할 수 있고, 신용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그 신용을 통한 이익을 소수가 아닌 기여한 모든 사람이 나눠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가치공유’는 블록체인이 추구하는 경제적 정의실현이기도 하다. 신용을 부여하고, 신용을 나눠주는 것도 탈중앙화돼 있는 커뮤니티 혹은 네트워크 안에서 가능하다. 스마트 계약에 의한 합의된 알고리즘을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면 된다는 것을 입증한 실험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이번 글에서는 블록체인이 어떻게 탈중앙화된 커뮤니티를 통해 신용을 부여하고 창출하는지 소개했다. 다음 글에서는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컨센서스(합의)’ 창출을 위해 필요한 투표 등 합의 도출 방식에 대해 적어 보겠다. /최예준 보스코인 대표
- 우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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