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추락하던 암호화폐 가격이 하락을 멈춘 채 주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급격한 암호화폐 시장 축소의 원인으로는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의 상장지수펀드(ETF)승인 연기로 인한 실망 매물과 ICO(암호화폐공개)프로젝트들의 실패를 꼽고 있다. 이후 이어진 가격 방어를 두고서는 화폐 가치 변동으로 경제 위기를 겪는 신흥국들의 비트코인 매집과 터키·이란 등의 신흥 시장 환율 불안으로 인한 암호화폐 투자 확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 월가와 미국 증권거래소(ICE)등 주류 금융권이 속속 암호화폐 시장에 진입하는 추세도 가격 방어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또 앞으로의 가격 향방에 대해 바닥을 다진 후 반등하는 시기라며 약세장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17일 현재 코인마켓캡 기준 비트코인 국제 가격은 지난 8일 7,135달러를 기록한 후 하락해 6,400달러 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월 이후 75% 이상 급락한 가격이다. 다른 알트코인들도 급격한 가격 하락을 보이면서 전체 암호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의 점유율은 지난 15일 올들어 처음으로 50%를 넘어서기도 했다. 다만 암호화폐 열풍이 최고조에 달하던 연초에 비해 시가총액은 1/3토막이 났다.
업계에서는 암호화폐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 원인 중 하나로 국내외 정부가 암호화폐 제도권 편입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SEC는 지난 8일 ‘반에크-솔리드X’ 비트코인 ETF 심사를 오는 9월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ETF 승인을 기대하고 유입됐던 투자 자금이 암호화폐 시장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SEC는 앞서 지난 7월 암호화폐 투자자 윙클보스 형제의 비트코인 ETF를 두 번 거절했다.
다만 SEC는 오는 23일 또다른 비트코인 ETF 신청에 대한 승인 여부 결정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ETF 전문기업인 프로쉐어즈(ProShares)가 구조를 짜고 미국 NYSE아카(NYSE Arca) 거래소가 신청한 비트코인 ETF 두 건에 대한 SEC의 답변 시한은 오는 8월 23일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비트코인 ETF가 승인되면 더 많은 투자자들이 기관을 믿고 투자에 뛰어들수 있지만 아직 비트코인 ETF를 제도권에 편입시키기에는 관리감독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브라이언 켈리 BK캐피탈 매니지먼트 대표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의 경제전문방송 CNBC의 패스트머니에 출연해 “다음 발표일인 9월 30일에 SEC는 또 승인을 연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이 아직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미국 대형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CEO는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SEC의 비트코인 ETF승인 연기는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국내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한대훈 체인파트너스 애널리스트는 이와 관련해 “아직 ETF를 제대로 운용할만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고 SEC에서도 시기상조라고 판단할 것”이라며 “결정이 나오는 9월까지는 잡음이 계속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한주 암호화폐 낙폭을 키운 또다른 원인으로는 ICO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부실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8일 ICO레이팅(Rating)이 발표한 ICO 마켓 리서치 보고서는 “2·4분기에는 ICO에 총 83억 달러가 유입돼 지난 1·4분기 보다 규모로는 60% 증가했지만 전체 ICO의 55%가 자금 모집에 실패했다”며 “ICO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품질이 크게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CEO 또한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대다수의 알트코인과 ICO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대표가 보기에도 현재 알트코인이나 ICO 프로젝트의 수준이 기대 이하인 셈이다.
다만 이번 가격 변동이 예상 범위 내에 있는 정상적인 조정과정이라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가격 하락과는 별개로 시장의 펀더멘탈을 튼튼히 할만한 환경이 꾸준히 갖춰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 중 하나가 암호화폐 투자자 증가다. 브라이언 암스트롱 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코인베이스의 하루 가입자가 5만 명 씩 늘고 있다”며 “암호화폐 시장이 5번의 버블과 조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비트코인은 큰 폭으로 상승한 후 60~70%의 조정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2년 코인베이스 설립 후 하루 가입자 수는 500명에 불과했지만 다음 버블시기에는 5,000명이 가입했다”며 “이번 급락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더리움의 공동 창시자인 조셉 루빈 컨센시스 CEO 또한 지난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암호화폐의 급등은 거품이었고, 지금 가격이 하락해도 이더리움과 암호화폐는 성장하고 있다”며 “이번 가격 하락으로 인해 이더리움의 개발이 더뎌질 것이라는 우려는 없다”고 낙관했다.
앞으로 가격 변화에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는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는 무역 전쟁이 꼽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특정 국가의 법정통화 가치가 급락할 가능성이 높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약한 국가에서는 암호화폐, 그중에서도 비교적 가격이 안정적인 비트코인 매입이 늘어난다고 보고 있다. 실제 터키의 경우 최근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인한 리라화 폭락으로 현지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량이 100% 가량 급증하기도 했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위안화의 평가절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중국 투자자들의 매집에 대한 기대감도 나왔다.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는 지난 16일 보고서를 통해 “중국 위안화 가치의 하락이 지속된다면 중국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위안화보다 비트코인이 일시적으로 주목을 받을 것”이라며 “6,000달러가 비트코인의 지지선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하락장이 바닥을 다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원재연기자 wonjaeyeon@decenter.kr
- 원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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