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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 Tech&Biz]②블록체인, 공평분배 넘어 부가가치 창출해야



한호현 경희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불과 200여 전 전인 19세기 초. 다산 정약용은 집중된 부의 공정한 분배를 위해 새로운 제안을 한다. 토지운영 개혁안인 ‘여전법’(閭田之法)이다.

18세기 조선 시대에 토지 독점이 심해지면서 백성들의 삶도 무척 힘들어졌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백성들의 난이 발생했다. 소수가 엄청난 토지를 보유한 결과이기도 하다. 정약용이 쓴 전론(田論)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부자로서 영남의 최씨와 호남의 왕씨가 있다. 이들은 곡식 1만 석을 거두는 토지를 갖고 있다. 그들의 땅은 적어도 400결 이하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바로 3,990인의 삶을 해치는 일이다.”

토지와 그 생산물의 독점은 조선 후기에 백성들뿐만 아니라 조선 왕실의 재정에까지 어려움을 줬다. 더 나아가 신진 세력들에게는 세력 확산에 커다란 장애 요인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신진세력들을 중심으로 토지개혁을 외쳤다.



오늘날 관점에서 여전법의 핵심을 새롭게 본다면 중앙 집중화된 부의 분배방식이다. 여전법은 토지를 공유하고 그 결과물을 생산하는데 기여한 바에 따라 균등하게 나누자는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여전은 일정한 경계에 따라 정해지는 일정 규모의 토지를 말한다. 전론에 장부의 기록이 등장한다. 이른바 여전의 장이 매일 매일 장부에 농사일에 참여한 자가 일한 양을 기록한다. 이 기록에 의거해 기여한 분량만큼 곡식을 공정하게 나누게 된다. 수확한 곡식이 1,000곡이고 모두가 일한 양의 합이 2만일이면 800일(4%)을 일한 가구에는 40곡(4%)을 주게 된다. 노력을 많이 하면 더 많은 곡식을 얻을 수 있어 모두가 노력을 다하게 되는 제도라고 했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의 여전법은 시행되지 않았다. 단지 하나의 방안으로 제안된 부의 분배 방식으로 끝났다. 당대 석학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율적 분배를 추구하는 최상의 방안을 제시한 셈이다. 이 방식은 공유와 자율조직이 그 핵심이었다. 여기에서 이를 지탱하는 요소로 기록 즉 장부를 언급한다. 여전법은 최근 들어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블록체인의 사상과 방식 등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다만 ‘토지’가 ‘자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사실 여전법에는 치명적 한계가 존재한다.

일정한 규모의 토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곡식의 양이다. 무한정 늘어나지 않는다. 여전에 참여하는 가구의 식구가 늘어나게 되면 각자의 수입이 줄게 되어 지탱하기가 어렵게 된다. 노인, 청년, 어린이의 힘의 불균형에서 오는 부의 독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어 있으나 실현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크다. 어쩌면 여전법의 한계는 요즘의 블록체인 사업 모델이 갖는 한계와도 비슷하다.

블록체인의 핵심은 변조가 힘든 장부가 그 중심에 있다. 물론 이 장부를 만들기 위해 참여자가 행하는 다양한 기여 방식이 존재한다. 작업 증명이나 지분 증명 등의 방법을 통해서이다. 문제는 그 장부 자체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업모델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 블록체인 장부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가치가 무엇이며 그로부터 생겨나는 부가가치가 무엇인가이다. 우리는 블록체인에 대하여 지나친 가치나 환상을 심어주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신뢰의 기계, 신뢰의 네트워크, 제2의 인터넷 등 다양하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경우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이중지급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 이상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정약용의 전론 또한 마찬가지다. 토지를 공유하여 경작한다 해도 토지가 주는 일정량의 가치 이외의 부가가치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곡식을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역할 이외의 부가가치가 없다. 대체로 공유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블록체인 사업 모델들이 여기에 속한다. 부가가치를 가져다주는 블록체인 사업 모델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는 아마도 장부의 완전성에 지나치게 집중한 결과일 수 있다. 사용하지도 않을 과거의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장부를 보관한다.

중요한 점은 부가가치의 창출이다.

저장된 장부의 자료로부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부분은 블록체인 자체에서 또는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부가가치를 이끌어 올 수 있는 사업 모델이다. 물론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던 사업에서 비용을 절감하고, 이용자에게 보다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도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델로는 혁신이나 혁명적 가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블록체인이 진정한 가치 혁명을 가져오려면 변조하기 어려운 장부의 특성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혁신적 가치 또는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낼 수 있는 모델 발굴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각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한호현 경희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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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호 기자
derrid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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