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암호화폐 시장은 ‘스테이블코인(stable coin)의 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스테이블코인의 인기가 뜨거웠다. 스테이블 코인은 현금 교환할 때보다 거래비용을 줄이면서도 일반적인 암호화폐에 비해 변동성이 낮아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겐 유용한 수단이다. 굳건할 듯했던 테더(USDT)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제2의 테더’를 꿈꾸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이 봇물 터진 듯 잇따르고 있다. 디센터는 스테이블코인의 세계를 시리즈로 심층진단 해본다.
페그(Peg)는 못이다. 테더(Tether)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 중 하나인 미국달러에 패깅(Pegging)하면서 그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 하고 있다. 달러의 가치와 연동된 암호화폐 테더(USDT)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스테이블코인이다.
그러나 이름값을 하긴 쉽지 않다.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지닌 USDT의 가격은 급등과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페깅코인’을 써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언스테이블코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조롱을 받기도 했다.
‘1달러=1USDT’라는 단순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시스템은 여러 번 시도되었으며, 처참한 실패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14년 8월 발행된 누비츠(USNBT)는 1달러와 연동되도록 설계됐다. 2016년 6월, 1USNBT의 가격은 0.3달러 밑으로 폭락했다. 수개월에 걸쳐 가격은 0.9달러 이상으로 회복했으나 현재는 0.11달러 수준이다.
누비츠 사태는 2017년 말과 2018년 초 비트코인(BTC)을 비롯한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하면서 비롯됐다. 이들 토큰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USNBT의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나 이후 BTC 가격은 다시 급락하자, USNBT를 팔려는 투자자가 급증했다. 이 물량을 소화할만한 매수벽을 마련되지 못하면서 USNBT는 날개 꺾인 새처럼 추락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없었다. 국내 스테이블코인을 상장한 한 거래소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의 실패 사례는 대중의 암호화폐에 대한 신뢰도와 더불어 각국 정부의 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깜깜이 정보부터 시세조작 논란까지…‘테더 스캔들’= 스테이블코인의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매수벽(Buy walls)과 매도벽(Sell walls)이 있어야 한다. 1ABC라는 스테이블코인을 1,000원에 패깅하고 싶다면, ABC 가격이 각각 1,001원과 999원일 때의 엄청난 양의 매도벽과 매수벽을 만들면 된다.
매도벽은 어렵지 않다. 스테이블코인을 법정화폐로 사려는 사람이 있다면, 더 발행하면 된다. 토큰 물량을 더 공급하면 가격은 올라갈 수 없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의 가격이 정해진 가격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매수벽을 쌓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우리가 가격이 떨어지지 않게 팔자 주문을 다 받아줄게’라고 밝힌다 해도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어야 한다.
테더 토큰인 USDT의 안정성 문제는 바로 이 신뢰에서부터 시작한다. USDT 사용자는 두 가지 부분에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테더가 USDT의 가치만큼 달러를 보유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테더가 USDT의 가격 방어를 위해 충분하게 매수할 의지와 실행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스테이블코인은 안정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테더는 첫 번째 조건부터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지난해 말 BTC 가격이 최고가격을 향해 달리고 있을 때 USDT의 시가총액도 급증했다. 이는 USDT를 뒷받침하는 달러의 보유량도 같이 늘어야 하는데 사실 이를 명백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시세조작 가능성도 제기됐다. 테더의 최대 거래소인 비트파이넥스가 발행한 테더로 비트코인을 구입해 시세를 끌어 올린 뒤 고점에서 매각 후 테더를 교환했다는 것이다. 거래은행과의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BTC 가격 급등 전인 지난해 4월 18일 테더는 두 곳의 은행과 협업 중단을 선언하며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했다. 올해 초에는 테더가 외부감사를 맡고 있던 프리드만(Friedman LLP)와의 협업을 중단하며 신뢰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최근에는 USDT를 바로 달러를 받고 팔 수 있는 몇 안 되는 거래소인 크라켄(Kraken)에서 문제가 일어났다. 1USDT의 가격이 일시적으로 0.85달러까지 하락한 것이다. 쏟아지는 매도 주문이 1달러 안팎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25%에 달하는 변동성이 나타난 셈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한 애널리스트는 “USDT의 가격 변동은 여전히 테더의 신뢰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다만 이제는 팍소스스탠다드(PAX), 트루USD(TUSD), USD코인(USDC), 제미니달러(UGSD) 등 다른 대체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이 많아 시장에 대한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신뢰냐 탈중앙화 철학이냐 , 한 번에 잡기 어려운 두 마리 토끼= 신뢰를 얻기 위해선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 사용자의 인증절차(KYC)도 진행해야 하고, 제삼자의 정기적인 외부감사도 받아야 한다. 신뢰도가 높으면 사람들은 해당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가격을 방어할 것이라고 더 쉽게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외부 감사의 강도와 검열 저항성, 이 두 가지는 역의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 암호화폐는 기본적으로 검열 저항성과 탈중앙화의 가치를 표방한다. 투명한 자산 및 거래내역 공개는 규제당국이 더 쉽게 자산을 동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탈중앙화 가치를 실현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현재의 미국달러를 대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구조의 스테이블코인은 계속해서 개발되고 실생활에서 거래되고 있다. 기존 스테이블코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도 나온다. 송범근 디콘 파트너는 “실리콘밸리에선 무담보형 혹은 암호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많은 벤처캐피털이 이러한 형태의 스테이블코인에 투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토큰에 상응하는 자산을 모두 보유해야 하는 달러에 패깅된 스테이블토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두보·박현영기자 shim@decenter.kr
- 심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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