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암호화폐 시장은 ‘스테이블코인(stable coin)의 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스테이블코인의 인기가 뜨거웠다. 스테이블 코인은 현금 교환할 때보다 거래비용을 줄이면서도 일반적인 암호화폐에 비해 변동성이 낮아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겐 유용한 수단이다. 굳건할 듯했던 테더(USDT)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제2의 테더’를 꿈꾸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이 봇물 터진 듯 잇따르고 있다. 디센터는 스테이블코인의 세계를 시리즈로 심층진단 해본다.
테더를 비롯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에서 토큰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한다. 가치의 자유로운 이동은 가능해지지만 여전히 ‘중개인(Middle man)’을 신뢰해야 한다. ‘탈중앙화된 스테이블코인’은 가능할까? 지난해 상반기부터 다수의 스테이블코인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컨센시스(Consensys)가 지난 7월 블로그를 통해 정리한 스테이블코인 수만 36개다. 잘 알려지지 않거나 준비 중인 프로젝트를 합치면 적어도 50개 이상의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조도 복잡해지고 있다. 달러와 같은 안전자산에 패깅하는 방식은 단순한 구조로 보일 정도다. 암호화폐를 담보로 삼고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구조에 이어 아예 담보가 없는 스테이블코인 구조도 등장했다. 중앙의 역할을 축소하고,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탈중앙화 스테이블코인 실험은 이제 막 시작됐다.
◇법정화폐 연동 코인, 발행사가 직접 신뢰 확보…중앙화 문제 지적도= 달러 등 법정화폐에 연동된 코인들은 발행사가 직접 신뢰 확보에 나선다. 공급량 조절을 위해 코인 가치만큼의 법정화폐를 보유하는 것이다. 치명적인 약점은 발행사가 끊임없이 사용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 신뢰가 무너지면 회복하기 쉽지 않다. USDT의 발행사인 테더(Tether Ltd.)는 은행과의 협업 중단, 부자연스러운 대규모 토큰 전송 등으로 신뢰를 잃기도 했다.
이후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으로 등장한 제미니달러(GUSD), 팍소스스탠다드토큰(PAX) 등의 발행사는 규제 기관의 인가, 정기 회계감사 등을 거치고 있다. 법정화폐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신뢰를 얻기 위함이다. 각각 GUSD와 PAX를 발행하는 제미니트러스트컴퍼니(Gemini Trust Company), 팍소스(Paxos)는 뉴욕주금융서비스국(NYDFS)으로부터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를 받았다. 이후 제미니는 미국공인회계사(AICPA) 기준을 토대로 정기 회계감사를 받고 있으며, 팍소스 역시 매달 미국 대형감사 업체인 위둠(Withum)의 회계감사를 거치고 있다.
◇암호화폐 담보형, 중앙서 보관하는 예치금 없어…거버넌스도 탈중앙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겪는 발행사의 신뢰 문제를 블록체인 기술로 풀 수는 없을까? 여러 시도 가운데 메이커(Maker)의 암호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은 사용자와 투자자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메이커는 담보부채권포지션(CDPs) 동적 시스템, 자동 피드백 메커니즘, 인센티브 구조 등을 이용해 스테이블코인 다이(DAI)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려 한다. 이 모든 절차는 스마트 콘트랙트를 기반으로 한다.
사용자는 메이커 플랫폼을 통해 암호화폐 이더리움(ETH)을 담보로 맡기고 DAI를 생성할 수 있다. 생성한 DAI를 되돌려주면 맡겼던 담보는 되찾을 수 있다. 만약 맡긴 암호화폐의 가치가 급격히 하락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해당 암호화폐는 자동 청산된다. DAI 사용자는 별도로 안정화 수수료(Stability fee)를 내야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토큰은 MKR이다. 이 MKR 토큰은 메이커 플랫폼의 거버넌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투표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투표로 결정된 사안은 메이커 플랫폼의 정책에 반영된다.
1DAI를 1달러의 가치에 묶는 게 메이커의 목표다. 1달러를 기준으로 DAI의 가치가 하락하면 사용자는 DAI를 생성하기 위해 더 많은 ETH를 담보로 맡겨야 한다. 그러면 DAI에 대한 수요가 줄고 이어 공급량도 감소하게 된다. 이를 통해 DAI의 가격이 다시 1달러에 수렴하게 된다. 반대로 DAI의 가치가 상승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DAI를 생성할 것이고 가치는 자연히 떨어지게 된다.
시장이 불안정하면 위와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를 대비해 메이커는 ‘목표 비율 피드백 메커니즘(TRFM)’을 구상했다. CDP의 비율, 즉 담보대비 생성 가능한 DAI의 목표값을 조정해 DAI를 지급 받는데 맡겨야 할 ETH의 수를 상황에 맞게 변경하는 것이다. 현재 전체 ETH 발행량의 약 1%가 DAI 사용을 위한 담보로 잡혀있다.
메이커 토큰인 MKR의 가격도 지난 9월 12일을 저점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탈 앤드리슨 호로위츠는 무려 1,500만 달러(168억원)을 들여 MKR 전체 공급량의 5%를 사들였다. 이로써 앤드리슨 호로위츠는 메이커 플랫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에 투자하는 국내 한 벤처캐피털 대표는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투자 결정은 앞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어느 방향으로 발전해나갈 것인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면서 “수익모델에 한계가 있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보다 알고리즘에 바탕을 둔 프로젝트들이 어마어마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알고리즘으로 공급량 조절? 제대로 작동되면 가능=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려면 발행사가 충분한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암호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은 사용자가 담보를 맡겨야 하기 때문에 사용성이 낮다. 사용자가 담보에 신경 쓰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은 없을까?
앞서 언급한 두 종류의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든, 암호화폐든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담보물이 필요하다. 발행사를 신뢰할 수 없거나 담보로 맡긴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게 되면 이들 스테이블코인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담보 없이 일정한 가격을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베이시스(Basis)는 이 분야에서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베이시스는 자체 블록체인 프로토콜에 중앙은행의 역할을 부여했다. 이른바 ‘알고리즘 중앙은행’이다. 베이시스의 토큰인 BASIS의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들은 베이스본드(BB·Base Bond)와 베이스쉐어(BS·Base Share) 등 두 가지 토큰을 활용한다. BB는 BASIS와 교환될 수 있는 채권의 역할을 한다. BASIS 가격이 목표로 하는 기준 가격 이하로 떨어져 공급량을 줄여야 할 때 프로토콜은 BASIS을 받고 BB를 경매 방식으로 매도한다. 그러면 BASIS의 공급량이 감소해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상승한다. 반대로 BASIS 가격이 상승하면 시중에 풀린 BB를 BASIS로 사들여 가격에 하방압력을 가한다.
BS는 BASIS가 대량으로 공급해야 할 때 사용된다. BB를 사들이는 것만으로 BASIS 공급량을 충분히 늘릴 수 없을 때 프로토콜은 BS를 보유한 홀더들에게 BASIS를 배당금으로 나눠준다. 그러면 BASIS의 시장 유통량을 추가로 늘릴 수 있다. 이런 특이한 알고리즘 덕에 베이시스는 앤드리슨호로위츠, 구글벤처스, 베인캐피탈벤처스 등 거대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유치했다.
국내 암호화폐 지갑 업체인 소버린월렛(Sovereign Wallet)도 자체 지갑에서 쓰이는 스테이블코인 무이(MUI)를 발행했다. MOI의 가격도 알고리즘 중앙은행에 의해 가격이 유지된다. 윤석구 소버린월렛 대표는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가 화폐의 기능을 하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로서 꼭 필요하다”며 “담보물이 필요한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담보로 쓰이는 화폐 자체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신뢰나 부정의 문제, 담보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탈중앙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도 완벽한 해결책으로 보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알고리즘을 통한 가격 유지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백서만으로는 그 효용성이 입증되지 못한다. 컨센시스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통화 정책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며 “실제로 잘 유지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극히 적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 대표는 “지금까지 화폐 발행은 국가독점사업이었으나 암호화폐가 등장하면서 발행 역시 다수의 검증을 받는 사업이 됐다”며 “스테이블코인의 가격 유지를 위한 알고리즘은 오픈 소스로 공개되기 때문에 충분히 다수의 검증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박현영·심두보기자 hyun@decenter.kr
-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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