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는 쓰여야 가치가 있다. 스테이블코인도 마찬가지다. 쓰임이 많으면 스테이블코인의 매도벽과 매수벽이 두터워지면서 가격 안정성이 높아진다. 더불어 사용처가 늘어 편의성도 더해진다. 모든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는 자사의 토큰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제휴 관계를 넓혀가고 있다.
단연 가장 많이 쓰이는 스테이블코인은 테더(Tether)의 USDT다. 발행된 토큰 수만 17억 개 안팎이다. 1USDT는 1달러에 페깅돼 있으므로 토큰의 시가총액은 17억 달러(1조9,200억원) 수준이다. 지난 2015년 2월 25일 시가총액 30만 달러(3억3,800만원)에서 시작한 테더의 비약적인 성장이다.
USDT는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가장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가격 변동성이 심한 토큰을 사고파는 기축 토큰의 역할을 맡는다. USDT를 활용하면 법정화폐로 BTC나 ETH를 사고, 다시 다른 토큰에 투자하는 것보다 수수료나 변동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물론 법정화폐로 토큰을 직접 사고팔면 좋지만, 대부분의 거래소는 규제로 인해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장세 꺾인 USDT, 맹추격하는 TUSD·USDC·PAX= 지난해 초부터 USDT의 발행량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 추세는 지난 9월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10월 들어 USDT 발행량이 급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8억 달러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47.5% 감소해 17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달엔 USDT의 가격도 큰 폭으로 출렁였다. 떨어지는 USDT 가격 때문에 일부 거래소에서 비트코인(BTC)에 수요가 몰렸고, 이 때문에 BTC 가격이 치솟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USDT와 BTC를 함께 다루는 비트파이넥스에서 BTC 가격은 평균가격보다 15% 이상 높게 형성되기도 했다. USDT의 발행사인 테더와 유통사인 비트파이넥스는 특수 관계인만큼 업계 일각에선 USDT의 신뢰에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
USDT의 빈자리는 트루USD(TUSD), USD코인(USDC), 그리고 팍소스스탠다드(PAX) 등 다른 달러 페깅 스테이블코인들이 메웠다. 이들 후발주자들은 테더가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시기에 공격적인 사세 확장에 나서고 있다. 국내 한 암호화폐 거래소 본부장은 “여러 스테이블코인 플레이어들이 거래소에 자신들의 토큰을 상장해주길 원하고 있다”면서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야 빛을 보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100%의 담보를 보유해야 하는 달러 페깅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만 장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향력 지표는 기준화폐 수·파트너 거래소·거래량= 힘을 다소 잃긴 했지만 여전히 압도적 1위 스테이블코인은 테더다. USDT의 시가총액은 17억 달러인 반면, TUSD, USDC, PAX의 시가총액은 각각 1억5,827만 달러, 1억3,518만 달러, 1억3,499만 달러다. USDT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하지만 추격 속도는 무섭다. 암호화폐 및 거래소 정보사이트인 코인힐스에 따르면 USDT는 최근 24시간(12일 오전 10시 기준)동안 28개의 거래소를 통해 488.69BTC 규모의 거래가 일어났다. 반면 TUSD는 이보다 훨씬 많은 9,017.22BTC 규모의 거래가 발생했다. 사람들이 USDT보다 TUSD로 더 많은 거래를 진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른바 ‘스테이블코인 4종 세트 상장’이 최근 연이어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인 오케이이엑스와 후오비는 지난달 TUSD, USDC, PAX, 제미니달러(GUSD) 등 4개의 스테이블코인을 상장한다고 밝혔다. 국내 거래소인 CPDAX 역시 이달 초 4개의 스테이블코인을 상장했다.
거래소에서의 스테이블코인의 역할은 분명하다. 안정적인 가격을 제공함으로써 투자자들은 스테이블코인을 기초통화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다른 거래소의 토큰을 사고자 할 때도 변동성의 위험 없이 스테이블코인을 전송해 사용할 수 있다. 당분간 스테이블코인의 발행량이 지속 상승할 것이란 전망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 내 1위부터 4위까지 달러 페깅 스테이블코인이 장악한 가운데 메이커다오(MakerDao)의 성장은 눈여겨봐야 한다. 지난해 12월 27일 탄생한 DAI는 불과 11개월 사이 몸집이 7,092만 달러(800억원)까지 성장했다. 코인힐스에 따르면 현재 DAI는 2개의 법정화폐(달러, 루블)와 BTC 등 7개의 암호화폐의 기준 화폐로 거래가 가능하다. 올빗, 비트파이넥스, 카이버네트워크 등 9개의 거래소에서 DAI를 거래할 수 있다.
/심두보·박현영기자 shim@decenter.kr
- 심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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