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던 2017년 말. 2018년 말 암호화폐 시장과 블록체인 산업계의 분위기는 1년 전과 사뭇 다르다. 지난 1년간 블록체인 업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디센터 편집국은 올 한해 발생한 여러 사건과 트렌드 가운데 블록체인 생태계에 의미를 지니는 10가지 뉴스를 추렸다.
1. 암호화폐 거래 실명계좌 도입
정부는 지난 1월 30일부터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를 이용하는 투자자들이 현금을 입출금하기 위해서는 실명계좌를 사용하도록 했다. 실명계좌는 거래소와 시스템이 연동된 은행의 계좌여야 한다.
정부는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을 막는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시장은 급등하는 암호화폐 가격을 잡아 투자 열풍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에 무게중심이 쏠렸다. 사실상 국내 신규 투자자의 시장 진입이 막혔다. 실명 계좌를 이용하면 암호화폐 거래를 계속할 수 있다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정작 은행에서 대다수 거래소의 계좌 개설을 거부했다.
정부조치는 암호화폐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당시 전체 암호화폐 시장에서 원화거래 비중은 8% 안팎으로 단일 통화 기준 달러와 엔화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1월 30일 5,714억 달러 수준이던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제도 시행 2개월 후인 3월 31일 2,526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국내 수요가 줄자 국내 거래소의 토큰 가격이 해외 거래소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도 사라졌다.
제재 방침이 발표되기 전후 정부 관계자가 암호화폐를 두고 잇따라 부정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청와대 신문고에는 암호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올라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가상통화 거래 과정에서의 불법행위와 불투명성은 막고, 블록체인 기술은 적극 육성해 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2. 비트코인캐시발 폭락...770조원 증발한 암호화폐 시장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올해 1월 7일 916조원에서 12월 5일 기준 143조원으로 약 11개월 동안 773조원 증발했다. 같은 기간 비트코인 가격은 1,904만원에서 440만원으로 4분의 1토막이 났다. 3월 이후 700만~1,000만원을 유지하던 비트코인은 지난달 20일을 기점으로 또 한번 대폭 하락했다. 11월 한달간 하락률은 37.4%로 2011년 4월 하락률 39% 이후 7년 7개월 만에 가장 큰폭의 하락률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트코인 캐시의 하드포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관계자의 규제 강화 시사 등 상승 모멘텀은 부족한 상황에서 불안요인은 커지자 비관론이 확산됐다는 평가다.
월가 출신 암호화폐 애널리스트 톰 리는 최근 디센터와 만난 자리에서 “신 기술이 싹트는 시기엔 기술에 대한 회의가 생길 수 밖에 없다”며 시장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평가를 냈다. 마이클 모로 제네시스 글로벌 트레이딩 대표는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암호화폐 가격이 바닥을 친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더 내려갈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며 “투자자들은 여전히 더 내려갈 경우에 대비해 관망하고 있다”며 추가 하락 가능성을 점쳤다.
3. 네이버 카카오 블록체인 사업 진출
카카오는 지난 3월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블록체인 사업 진출을 알렸다. 그라운드X가 선택한 블록체인 사업 분야는 블록체인 플랫폼. 블록체인 시대에도 모바일에 이서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방향을 명확히 했다. 현재 카카오의 블록체인 클레이튼은 디앱 생태계 구축에 나서며 실생활 블록체인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지향점에 한 발 씩 다가가고 있다. 최근에는 신현성 티몬 의장의 프로젝트 ‘테라’와 협업을 발표하기도 했다.
네이버 역시 자회사 라인을 통해 블록체인 플랫폼 ‘링크 체인’을 개발 소식을 전했다. 라인 측은 내년 상반기 퍼블릭 블록체인 개발 로드맵을 공개할 예정이다.
카카오와 네이버의 진출로 이전까지 가능성은 크지만 스타트업들의 ‘긱(Geek)’한 도전 영역 정도로 인식되던 퍼블릭 블록체인이 주류 산업계의 핵심 사업분야로 인증받았다. 온라인 플랫폼 강자들이 석권해야 할 다음 시장으로 블록체인에 주목한 셈이다. 다만 카카오와 네이버 모두 퍼블릭 블록체인 사업을 주도하는 법인의 본사를 국내가 아닌 일본에 뒀다는 점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4. 신일그룹 보물섬 사기사건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암호화폐(ICO) 열풍이 불었지만 투자자와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는 오히려 ICO 스캠(SCAM·사기)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미국 ICO 자문사인 새티스그룹은 지난달 “ICO의 81%가 사기”라고 분석했으며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앤영(Ernst & Young, EY) 역시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ICO를 하고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 중 86%가 현재 상장가보다 가격이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신일골드코인은 바다 밑 보물선을 건져 투자자에게 나눠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집한 사건이다. 신일그룹은 20세기 초반 발발한 러일 전쟁 당시 동해안에 침몰됐다는 러시아의 돈스코이호에 150조원의 보물이 묻혀있다며, ICO로 모은 자금으로 배를 인양한 후 보물 판매 대각을 투자자에게 배분하겠다며 올초부터 토큰을 판매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8월 신일골드코인 사기 피의자 유승진 씨가 홈페이지 업체에 회원가입시 100만 신일골드코인을 지급하고 인터넷 방송 별풍선을 참고해 개발하라고 요구했을 뿐 암호화폐를 설명하는 백서 등을 만든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2,600여명, 피해금액은 90억원 규모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신일골드코인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신일골드코인과 보물선을 앞세워 투자자를 모집한 신일그룹 측이 SL블록체인그룹으로 이름을 바꾸고 ‘트레져SL 코인’이라는 이름의 암호화폐를 판매에 나섰다.
5. 스위스, ICO 가이드라인 발표
스위스 금융당국(FINMA·핀마)은 지난 2월 ICO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 ‘암호화폐를 별도로 규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구체적으로 ICO에 대한 규제 원칙을 마련한 첫 국가 사례다.
핀마는 가이드라인에서 암호화폐의 종류를 결제용 토큰(Payment Tokens), 유틸리티 토큰(Utility Token), 그리고 자산 토큰(Asset Token)으로 나누고, 자산형 토큰에만 기존 금융 관련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ICO를 새로운 형태의 기업 자금조달로 받아들이고 제도화한 셈이다.
스위스가 정초 ICO 제도화의 물꼬를 텄지만 세밑에 다다른 현재까지 스위스를 제외한 각국 정부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여전히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 4월 민간 협의체가 마련한 ICO가이드라인을 정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현재까지 별도의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경우 최근 증권법을 위반한 ICO 프로젝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제이 클레이튼 SEC 의장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컨센서스 행사에서 “이른 시일 내 ICO 가이드 라인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현재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인 홍남기 당시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ICO 일제조사 결과가 나온 뒤 다음 달(11월)에는 ICO 관련 정부 입장을 형성하려 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조사결과가 늦어지면서 정부 입장이 올해 안에 나오기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6. 국내 1위 거래소 빗썸 매각
10월 12일 국내 1위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이 싱가포르 BK컨소시엄에 매각됐다. BK컨소시엄은 빗썸 최대 주주 비티시홀딩 컴퍼니가 보유한 지분인 ‘75.99%의 절반 +1주’를 3억5,000만 달러(약 4,000억원)에 인수하면서 지분율 38%로 빗썸의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업계의 관심을 끈 점은 빗썸의 가치 평가액수. 상위권 거래소의 인수 합병 사례가 없었던 국내에서는 애초 빗썸의 가치가 1조원에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빗썸은 전체 기업가치를 1조456억원으로 평가받았다.
BK컨소시엄의 김병건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10여개국으로 거래소를 확장할 계획”이라며 “미래의 금융기관이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최대주주 변경 이후 빗썸은 미국에 증권형 토큰 거래소 설립 계획을 밝히고, 국내 상장 시스템에 투표제를 적용한 ‘픽썸’ 서비스 등을 선보이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빗썸은 거래소 이외에도 블록체인 프로젝트 인큐베이팅 사업 등 다양한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7. 잇따른 거래소 해킹 사고
세계 암호화폐 투자자는 2018년 한해 동안 거래소의 잇단 해킹 사건사고로 몸살을 앓았다.
2014년 당시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70%가 이뤄지던 일본의 암호화폐 거래소 마운트 곡스 해킹사건 이후 거래소 해킹 문제는 암호화폐 투자업계의 숙제로 꾸준히 지적됐지만 올해도 거래소 해킹은 끊이지 않았다. 거래소들이 4년전과 비교해 보안분야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음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해킹소식은 정초부터 들렸다. 올 1월 일본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체크에서 5,700억원이 해킹됐다. 일본에서는 9월 자이프에서 670억원 상당의 암호화폐가 도난당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국내 역시 지난해에 이어 2건의 거래소 해킹 사건이 발생했다. 올 6월에는 국내 거래소 코인레일는 펀디엑스와 엔퍼, 애스톤 등 400억원 규모의 가상화폐 9종이 해킹당했다. 국내 1위 거래소 빗썸도 같은 달 20일 350억원 규모의 암호화폐 해킹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빗썸은 “해킹으로 탈취당한 자산은 회사보유분”이라며 암호화폐 입출금 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빗썸의 입출금 중단으로 빗썸 내에서만 이상 가격 급등락 현상이 발생하는 후유증이 일기도 했다.
8. 베네수엘라의 통화 실험
암호화폐를 이용해 법정통화의 가치를 지지하는 실험이 올해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됐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 8월 대국민 연설에서 국영 통화 볼리바르의 단위 재조정을 발표하면서 이를 암호화폐인 ‘페트로(Petro)’와 연동한다고 밝혔다. 법정화폐와 암호화폐를 결합하는 파격 실험이다.
페트로는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연동된 암호화폐다. 페트로와 볼리바르의 연동은 결국 암호화폐를 매개로 베네수엘라 석유 가격에 법정화폐의 가치를 고정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연간 100만%에 달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법정화폐 가치가 추락하고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은 현지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시도로 읽힌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산 석유의 품질이 떨어지고, 생산 설비가 실제 가동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 암호화폐 페트로 자체가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지적받는다. 암호화폐 평가 사이트 ICO인덱스는 지난 4월 페트로에 ‘사기’ 등급을 부여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현지 은행에서 페트로를 사용하도록 하고 여권 수수료를 페트로로 받는 등 페트로 활성화에 나섰다.
베네수엘라에 앞서 마셜제도는 지난 2월 암호화폐를 법정 통화로 도입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세계 금융 시장에서 고립돼 가는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시도다. 다만 IMF는 “자금세탁 등 리스크를 예방할 방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암호화폐를 보조 법정 통화로 발행하는 것은 거시경제 및 금융 건전성 측면에서 위험을 가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9. 워즈니악 등 IT·금융계 거물들, 암호화폐 업계로
올해는 정보기술(IT), 금융 등 전통산업계의 글로벌 거물들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야에 본격 진입한 해이기도 했다.
지난 2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하는 헤지펀드 판테라 캐피털은 윌리엄 힐리 전 도이치뱅크 전무이사의 영입을 알렸다. 힐리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나에게 전환점을 시사하고 있다”며 “마치 새로운 이머징마켓이 부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힐리 뿐 아니었다. 전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암호화폐거래소 제미니로, 전 골드만 삭스 임원 프리얀카 릴라라마니는 몰타기업 암호화폐 기업 홀드(HOLD)의 최고경영자로 자리를 옮겼다. IT업계에서도 레이첼 호로위츠 페이즈북 기술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링크드인 기업개발 부사장 출신 에밀리 최가 코인베이스의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암호화폐 가격 침체가 이어진 하반기에도 거물들의 이직 소식은 잇따라 전해졌다. 지난 10월 15일 블록체인 벤처캐피털 에퀴 글로벌(EQUI Global)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의 합류를 공식 발표했다. 에퀴는 블록체인 기술과 서비스 업체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펀드다.
10. 지닉스 서비스 종료
2018년 대한민국 암호화폐 산업 환경의 현주소. 그동안 암호화폐 거래소는 ‘해외 진출을 하려해도 은행에서 해외 송금을 해주지 않는다’는 등의 고충을 토로해왔다. 암호화폐를 취급하지 않는 일반 블록체인 기업도 은행에서 계좌발급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지닉스의 폐업을 두고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가가 금융분야 또는 암호화폐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범죄자로 낙인 찍힐 수 있는 국내 기업환경의 속살이 드러났다는 평가나 나왔다.
지닉스는 지난달 23일 문을 닫았다. 5월 8일 설립 후 6개월 만이다. 9월 출시한 암호화폐 펀드 ‘ZXG 크립토펀드 1호’를 둘러싼 논란이 폐업의 계기가 됐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자금 모집 규모가 10억원 이상일 경우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지닉스가 내놓은 펀드는 한화로 2억원 규모. 다만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했다.
전례가 없는 만큼 지닉스의 펀드가 현행법 위반인지는 법적 판단이 명확하지 않다. 지닉스는 이에 애초 2호 펀드 출시 계획은 취소하되, 1호 펀드는 계속 운영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당국과 대립하며 사업을 지속하는 대신 폐업을 결정했다. 지닉스는 지난 9일 “최근 불거진 암호화폐 펀드 상품 출시와 관련된 이슈로 인해 앞으로 지속적인 거래소 운영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며 서비스 종료를 알렸다. 최경준 지닉스 대표는 디센터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선택을 후회한다”는 말을 남겼다.
/디센터 산업팀
-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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