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투자협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커스터디(Custody·수탁) 시장의 4대 대형사인 피델리티(Fidelity), 슈왑(Schwab), TD 에머리트레이드(TD Ameritrade), 퍼싱(Pershing)의 평균 수탁 규모는 5,000억 달러(약 565조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암호화폐 시가총액인 1,260억 달러(약 140조 원)의 4배가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전통 커스터디 시장 강자들이 움직이는 자금의 규모가 전체 암호화폐 시장 규모를 가뿐히 넘어선다는 의미다.
커스터디 서비스란 기존 금융권에서 금융기관이 고객의 금융 자산을 대신 보관 및 관리해주는 것을 일컫는다. 자산보관과 더불어 매입·매도를 대행하기도 한다. 막대한 규모의 자금을 다루는 기관일 경우 자산관리 위험에 민감하기 때문에 커스터디 서비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직접 자산을 관리할 필요가 없고 외부 도난과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가 가능하다.
암호화폐 시장의 경우 암호화폐 가격 변동 폭이 상대적으로 큰 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시장이라는 점 등이 기관투자자들의 진입에 큰 벽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암호화폐 전문 커스터디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 환경을 제공해 기관 투자자의 유입을 이끄는 시장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피델리티 등 해외 거대 금융기업도 관심= 기존 금융시장 강자인 골드만삭스, 피델리티 등은 일찍이 암호화폐 특화 커스터디 서비스 진입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7월 미국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코인베이스 커스터디’를 출시하고 연이어 200억 달러의 헤지펀드 자금을 수탁 받으면서 커스터디 시장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인가를 받은 자회사 일렉트로닉 트랜잭션 클리어링(ETC) 브로커리지 사와 함께 운영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라이트코인(LTC), 비트코인캐시(BCH) 등 암호화폐의 자산관리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10월 골드만삭스도 암호화폐 커스터디 서비스 스타트업 비트고홀딩스에 1,6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관심을 드러냈다. 같은 달 전통 커스터디 시장에서 강자로 꼽히는 세계적인 자산운용그룹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가 암호화폐 커스터디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암호화폐 시장의 유명인사인 제미니 형제도 유사한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일본 노무라 및 노던트러스트도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이은 커스터디 시장 진출 소식에 이 소식을 전한 다수의 외신은 암호화폐 시장에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하게 되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암호화폐가 기관투자자들이 인정하는 투자 수단으로 떠올랐음을 시사한다고도 해석했다. 한 외신은 “암호화폐 산업이 안정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며 “암호화폐 시장에 더 많은 기관투자가와 고액순자산보유자들이 참여할 것”이라며 반색을 표했다.
◇국내 기업도 꿈틀…세분화한 서비스로 공략=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도 차별화된 서비스를 무기로 커스터디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에만 두 회사가 커스터디 서비스 출격을 예고하면서 해당 산업의 성장에 대한 업계 관계자들의 기대감이 증폭됐다. 법 집행기관의 암호화폐를 전문적으로 맡겠다는 특화 서비스부터 기관투자자들의 암호화폐를 수탁하는 일반적인 서비스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블록체인 기반의 핀테크 업체 스트리미는 집행기관을 대상으로 한 커스터디 서비스 다스크(DASK)를 출시했다. 검찰·경찰 등 법 기관이 사건수사와 관련된 암호화폐를 보관관리 할 수 있는 ‘증거물 관리 특화’ 서비스로 6중 금고 시스템 체계로 견고함을 갖췄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스티리미는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면 민간 업체를 위한 서비스로 확대할 방침이다. 실제 수탁 받은 서비스는 아직 없다. 스트리미 관계자는 “암호화폐가 제도권에 들어선다면 정부 및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을 중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암호화폐 시장이 성장하면 해당 수요도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개발 전문기업 아톰릭스컨설팅 또한 커스터디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커스터디 서비스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암호화폐 지갑 서비스 기술을 보유한 크레스텍와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등 크립토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아톰릭스는 블록체인 업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블록체인 기술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블록체인 기술연구소인 헥슬란트 또한 ‘헥슬란트 커스터디’라는 이름으로 커스터디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10여종의 암호화폐를 지원한다. 헥슬란트 커스터디는 △ 암호화 키 매니지먼트 솔류션(KMS) △ 해킹 관제 시스템 △대시보드 형태의 정보 제공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류춘 헥슬란트 서비스 디렉터는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수탁 암호화폐를 더욱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용성을 개편해 글로벌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정교하게 다듬어나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 또한 이런 흐름이 반가운 기색이다. 침체한 암호화폐 시장에 국내외 대기업의 자금이 유입통로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암호화폐 시장 흐름을 봐도 커스터디가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작동하고 있다”면서 “국내도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기관 투자자들이 들어서면서 투자 규모 자체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전문적인 위탁 서비스인 커스터디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좀 더 다양한 시장 참여자를 암호화폐 시장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서 “기존 금융 시장의 커스터디 규모를 비춰봤을 때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영역”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내 암호화폐 커스터디 시장이 활성화되긴 어려울 것이란 우려의 시선도 있다. 스타트업이 아닌 금융회사들이 금융당국 눈치 보기로 인해 커스터디 시장에 뛰어들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정부의 입김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아직 시장 진출 선언을 꺼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큰 금융기관이 들어서야 활성화할 것”이라며 “당국이 암호화폐 거래소 계좌 오픈조차도 목줄을 죄는 상황에서 섣불리 커스터디 시장에 진출하려는 금융회사는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은동기자 edshin@decenter.kr
- 신은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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