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는 ‘증권’ 아닌 ‘디지털 자산’…미국
암호화폐에 대해 미국 SEC가 입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7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EC 측은 암호화폐에 증권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제도권 안에서 암호화폐를 다스리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1년 뒤, 윌리엄 힌먼 SEC 국장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는 증권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ICO의 경우는 증권법을 기준으로 제재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입장을 전하며 SEC의 기존 입장과는 조금 다른 주장을 펼쳤다.
그러다가 지난 12일(현지시간) 제이 클레이튼(Jay Clayton)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이더리움(ETH)은 미국 연방증권법상 ‘증권’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암호화폐가 증권 형태로 발행 및 거래되더라도 유가증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힌먼 SEC 국장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 SEC는 지난해 ‘디지털 자산 증권 발행 및 거래’라는 제목의 성명을 공개했다. 이 성명에는 ‘투자계약’을 통해 발행 판매되는 디지털 자산은 거래 과정에서 어떤 명칭이나 기술이 사용되더라도 증권이며, 미등록 및 불법으로 발행된 디지털 자산에 대해선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더불어 해당 자산이 증권거래법에 따라 증권으로 등록되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성명에 따르면 디지털 자산 관련 증권의 거래를 중개하거나 ‘거래소’로 운영되는 플랫폼은 증권거래소로 SEC에 등록되어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의 계좌 거래에 영향을 주거나 타인의 거래를 위해 증권 매매에 개입하는 주체는 모두 중개상으로 정의되며 해당 주체는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 등록해야 한다.
ICO가 증권이라는 기조는 유지 중이지만 암호화폐 거래와 관련한 규제는 주(州) 마다 다르다. 총 50개의 주와 한 개의 특별구로 나뉘어 있는 미국에서는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규제가 동일하지 않다. 한 예로 미국 오하이오주는 지난해 11월 암호화폐를 통한 세금 납부를 허용했다. 과거 일리노이, 애리조나, 조지아주도 암호화폐 세금 납부 입법을 추진한 바 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현재 콜로라도주에서는 ‘콜로라도 디지털 토큰 법안’이 통과되면서 암호화폐가 해당 주 증권법의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차근차근 법률 마련해나가는 캐나다
캐나다에선 최근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쿼드리가 CX’ 사태(거래소 프라이빗키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대표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고객 자금이 묶인 사건)가 터지면서 암호화폐 거래소 관련 규제 프레임워크를 세우려는 분위기다.
캐나다 증권관리협회(CSA·Canadian Securities Administrators)와 캐나다 투자산업규제기관(IIROC·Investment Industry Regulatory Organization of Canada)은 암호화폐 거래소와 관련한 법률이 마련돼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에 대한 규제 명확성과 투자자 보호 관련 법률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골자다.
현재 캐나다 국세청은 비트코인 투자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국세청은 암호화폐 투자 방식, 투자 경로, 신원 정보 없이 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 이용 여부 등의 세부적인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설문을 실시하고 있다.
캐나다 국세청은 지난 2013년부터 암호화폐를 상품으로 간주하면서 암호화폐 과세를 실시해 왔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4년에는 자금 세탁 및 테러 자금 조달법에서 암호화폐를 포함하도록 했으며, 지난 2017년에는 국세청 내 암호화폐 전담팀을 개설해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감사 및 위험요소 관리 등을 처리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암호화폐에 대해서 캐나다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캐나다 중앙은행이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가 복지 정책 등에서 실효성을 불러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CBDC를 통하면 중앙은행은 여러 유형의 거래를 지원하는 등 유연한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거래에 대한 규제는 주마다 다르다. 한 예로 캐나다 서부에 위치한 브리티시 콜럼비아(British Columbia) 주 증권위원회(BCSC·British Columbia Securities Commission)는 최초로 암호화폐 전용 투자 펀드를 승인했다. 이 펀드는 공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비트코인 신탁 투자 상품으로, 투자자들은 이를 통해 노후 대비와 은퇴적금(RRSP), 비과세 저축(TFSA) 등과 관련한 활동을 할 수 있다.
‘크립토 국가’ 별칭처럼 규제도 시원시원하게 구축하는 스위스
스위스는 ICO 국가답게 관련 가이드라인을 가장 먼저 발표한 국가다. 스위스 금융당국(FINMA)은 지난해 2월 암호화폐의 종류를 지불형 토큰(Payment Tokens), 유틸리티 토큰(Utility Tokens) 그리고 자산 토큰(Asset Tokens)으로 나누면서 이들을 기존 금융규제 체계 안에서 다루는 방안을 제시했다. ICO를 새로운 형태의 기업 자금조달 수단으로 받아들이면서 제도화한 셈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스위스 FINMA는 자산 토큰과는 달리 지불형 토큰과 유틸리티 토큰을 증권으로 보지 않는다. 유틸리티 토큰의 경우, 발행 시 투자 목적이 있다면 자산 토큰같이 증권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을 확고히 했다.
스위스 정부에서 암호화폐 산업 육성을 위한 발판을 마련함과 동시 금융권의 움직임은 활발하다. 스위스 최대 증권거래소그룹인 SIX스위스거래소는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주요 암호화폐의 가격을 반영한 상장지수상품(ETP·Exchange Traded Product)을 상장했다. 아울러 최근에는 리플 관련 ETP(exchange-traded product)를 상장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스위스 민간은행들의 행보도 주목할만하다. 올해 2월 125년 전통을 가진 스위스 줄리어스베어 은행은 암호화 자산 운용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스위스쿼트 역시 같은 행보를 보였다.
국민 동의 없이 국가 암호화폐 페트로(Petro) 사용하게끔 하는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경기 부흥을 목적으로 석유 자원 기반의 암호화폐 ‘페트로’를 발행해 국가 화폐인 볼리바르와 연동시켰다. 이는 세계 최초의 법정화폐 연동 사례다.
정부는 페트로 외 타 암호화폐와 관련한 가이드라인 마련에는 뒷전이다. 정세 불안에 국민 사이에서는 비트코인이 대안 화폐로 주목받고 있는데도 현재 베네수엘라의 모든 정부기관은 국민의 동의 없이 페트로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12월부터 국민연금을 페트로로 지급하고 있다. 당시 연금 수급자들은 페트로와 함께 환전 관련 설명서를 지급 받았다. 설명서에 따르면 연금 수령자들은 자신의 페트로 지갑을 연금 포털 사이트에 연동해 연금을 수령한 후 은행에서 볼리바르로 환전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동의 없이 연금을 암호화폐로 지급하자 외신은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이 시작된 이후 고령자들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연금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며 “이번 조치로 이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암호화폐 별도로 규제하지 않는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암호화폐를 별도로 규제하지는 안되, 기존의 법 체계를 가능한 한 적용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국가다.
싱가포르 재무부(MAS)는 산업 발전을 위해 ICO 가이드라인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업데이트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토큰을 발행하는 업체와 토큰 거래 관리기관, ICO 자문서비스업체 등은 모두 중앙은행이 고객 거래를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내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토큰 발행 프로젝트와 ICO 자문 서비스업체는 싱가포르의 자본시장 금융 서비스와 관련된 라이선스를 획득해야 한다. 자문서비스업체와 암호화폐 거래소 등은 MAS의 승인이 떨어져야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토큰 발행과 관리 재무 컨설팅 등 싱가포르 규제당국의 손을 한번 거쳐야 한다.
최근 싱가포르 의회는 지불형 토큰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과 더불어 지불형 토큰도 싱가포르 법의 울타리 안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내에서는 기존의 법 체계 외에도 추가적인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짙다. 소프넨두 모한티 싱가포르 통화청 핀테크 부서장은 암호화폐가 자금세탁 등 금융 범죄에 쓰이지 않도록 주시하는 한편 건전한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입법 조치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암호화폐? 법정화폐 NO, 거래도 불법인 중국
규제적인 부분을 고려했을 때 중국은 여러모로 우리나라와 닮았다. 중국 정부는 2017년 9월 암호화폐 거래소와 ICO를 금지한 이후 암호화폐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안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올해 안으로 중국 내 모든 금융기관에 암호화폐 관련 자금 지원을 중단하라는 방침을 내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육성과 관련해선 태도가 사뭇 다르다. 중국에서는 블록체인 산업 표준 마련에 한창인 모습이다.
중국 정부는 올해 1월 기존의 사이버 보안법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 ‘블록체인 정보 관리 규정’을 공개했다. 이 규정의 특징은 크게 ▲해외 블록체인 재단의 정보 제공 의무 강화 ▲블록체인의 익명성을 이용한 자금 세탁 방지 ▲ICO, IEO, P2P 등 거래 규제 근거 확보로 나뉜다. 일부 외신은 이에 대해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투자 및 해킹 피해를 최소화하고 자국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육성하기 위한 틀을 만들었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지난 11일(현지시간) 중국 정부 공업정보화부와 트러스티드 블록체인(Trusted Blockchain·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연맹)은 블록체인 기반의 상품 추적 애플리케이션 관련 규범을 공개했다. 식품과 같이 상품 추적이 필요한 일부 영역에서 이 표준이 심층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외신들의 반응이다. 이 표준은 각 산업의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에 적용될 예정이며 중국통신표준화협회(CCSA)의 표준으로도 적용될 전망이다.
차이나 인터넷 리포트(China Internet Report)에 따르면 상하이, 산서, 허난, 광저우, 귀양, 항저우시는 블록체인 개발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발표했으며 슝안신구(Xiongan New Area)는 블록체인 혁신 허브로 개발되고 있다.
ICO 가이드라인 마련에 적극적인 일본
일본 정부는 암호화폐의 명칭을 ‘암호자산’으로 변경하는 등 ICO 가이드라인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화폐라는 용어 대신 ‘자산’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암호화폐를 정부가 인정하는 법정화폐로 인지하지 않게 되고, 이는 투자자들이 암호화폐 사기를 경계하게 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게 일부 외신의 설명이다.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암호화폐라는 명칭을 고쳐 쓰면서 암호화폐 거래소와 거래 관련 규제 강화책을 포함한 금융상품 거래법과 자금결제법 개정을 결정했다. 외신은 “이번 결정은 향후 공개될 ICO 가이드라인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며 “(다가올 ICO 가이드라인이)투자자 보호 면모를 더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일본 정부의 ICO 가이드라인 초안에 따르면 암호화폐 발행 기업은 ICO에 앞서 사전신고를 꼭 마쳐야 하며 기업 재무상태 등을 공시해야 한다. 거래소의 경우에는 암호화 키(key) 보호를 강화하면서 최소 교환 대상 통화나 펀드 금액 이상의 자산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편 최근 일본 암호화폐 사업체 협회(JCBA)는 최근 ICO 규제 관련 권고안을 발행했다. 이 권고안은 ‘일본 거래소 내 암호화폐 확장’과 ‘유틸리티 및 시큐리티 토큰의 정의’, ‘유틸리티 및 시큐리티 토큰의 규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김연지기자 yjk@decenter.kr
- 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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