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FATF는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확정했습니다. 큰 골자로는 암호화폐 취급업자에게 금융회사에 준하는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송금시 수취인과 송금인의 정보를 모두 관리하도록 한 것, 즉 지갑실명제를 실시하도록 한 것을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지갑실명제란 표현을 썼으나 사실 100% 일치하는 표현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규정의 확정은 암호화폐의 제도권 편입을 위한 전초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규정을 통해 자금의 흐름이 투명해진다면 세수확보, 부정부패, 횡령 등의 여러 문제를 푸는 데 많은 이점이 발생합니다. 당연히 정부 입장에서는 꺼릴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두손두발 들고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원화(KRW)를 블록체인상으로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금융에도 커다란 지각변동이 느리지만, 천천히 시작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금융을 하기 위해 은행 사이트에 접속할 필요도 없고, 무거운 프로그램을 4~5개씩이나 설치할 필요도 없고, 맥 사용자가 불편을 겪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웹사이트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아주 쉽게 돈이 날아다닐 테니까요.
인터넷으로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냈던 것이 버튼 하나로 간소화됐던 것과 같은 일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토스와 STRIPE가 가져온 편리함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던 일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개발자들은 웹사이트 만들 듯이 아주 쉽게 어디에든 금융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용카드와 IT망이 세계적으로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도 이럴진대, 신용카드와 금융이 보편화되지 않은 나라들에서는 더욱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물론 여러 해결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외화반출문제가 정부가 가장 걱정할 일일 수 있습니다. 다만, 당분간은 지금의 비트코인과 같은 코인들은 그 규모를 볼 때 전통시장에서의 금과 같은 투자자산의 위치를 점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보다 먼저 눈앞에 닥친 문제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지갑실명제는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지갑실명제의 해결책은 인터넷 도메인네임시스템(DNS)을 유추해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KT와 구글 같은 사업자들의 DNS에는 전 세계의 IP주소와 도메인 주소가 매칭된 데이터베이스가 공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서버에 특정 도메인이 등록되면 각 DNS서버끼리 정보를 공유해 각 노드의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합니다.
이와 같이 지갑실명제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특정 개인의 정보와 지갑주소가 매칭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빗썸이 주도하면 가능할까요? 업비트가 주도하면 가능할까요? 조심스럽게 예측하면 특정 사업체가 주도해서는 공동의 데이터베이스를 쌓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국민은행이 “내가 한번 해볼게. 하나은행이랑 신한은행이랑 내 밑으로 들어와.”라고 한다면 모두가 순순히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을까요? 나아가 그럼 데이터 소유권은 누가 가지게 되는 것인지, 이 데이터베이스에 정보를 쌓고 이용하고 싶다면 누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와 같이 각 프로젝트 팀의 이익이 얽힌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서 봤을 때, 오히려 독립적인 비영리기구가 플랫폼을 만들어 공공재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이 개념은 블록체인을 조금만 공부했다면 익숙한 개념입니다. 공공의 플랫폼에 각각 보유한 데이터를 공유하고 기여분만큼 이익을 배분받고, 진출입은 자유로우며, 그 플랫폼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는 블록체인 정신에 부합하는 시스템인 것이죠.
모두가 그리는 세상에 한 발자국 다가가기 위해 업계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시기가 다가왔고, 이제는 업계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다시 대한민국이 블록체인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안영찬 ARGOS 이사
- 심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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