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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 스냅샷]나는 비겁하게 그림자 뒤에 숨어 있었다


날밤을 샜단다. 해커톤이 원래 그렇다. 무박이일. 그래도 200개의 눈동자는 똘망똘망했다. 지난 2일 성남 SKU 타워 대회의실. ‘파운더스 2019 SUMMER X SK C&C 인싸잇’ 프로그램의 마지막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에 꽂힌 100여명의 대학생들이 ‘2주 동안’ 수업을 듣고, 기업 탐방을 하고, 팀 토론을 거쳐 “이런 사업을 해보겠다”는 기획안을 발표하는 자리였다.(영어 논문을 쓰지는 않았다.) 풋사과 향이 물씬 났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심사는 오후 늦게 끝났다.

심사위원들이 간단한 평을 하고, 수상 팀들을 발표했다. 팀원들이 모여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하고,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을 한 켠에서 지켜봤다. 대회장에 참새 떼가 난입한 것 같았다. 조잘조잘, 꺄르륵 꺄르륵. 상을 받았거나, 아니거나, 끝까지 함께 했음을 자축하고 있었다. 피곤하지만 활짝 웃고 있는 얼굴들을 보자 젊음, 도전,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IT 산업, 블록체인의 미래가 여기, 이 친구들 손에서 피어나겠지. 수상 팀 중 하나는 창업을 하겠단다. “아이디어 좋더라구. 잘 다듬어서 사업 열심히 해봐요.” 대회장을 나서며 덕담을 건냈다.

문뜩 마음이 무거워졌다. 현실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의 고통을 알고 있는 터다. ‘창업이라, 그것도 블록체인 기술로...’ 뒷풀이 장소로 뛰어가는 그들 뒤로 한여름 늦은 오후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폭염 앞에서도 당당한 젊은 열기와 뭔지 모를 답답함이 교차한 하루였다.

그 답답함은 사흘 후 국회에서 열린 암호화폐 거래소 관련 공청회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블록체인 기술은 육성하지만 암호화폐는 안된다”는 정부 기조는 한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창업하겠다는 파운더스 수상 팀이 떠올랐다. 이 팀의 아이디어에도 암호화폐가 담당하는 기능이 있다.

며칠 전 그 팀을 다시 만났다. 사업성을 점검해보고 싶었다. 경험 많은 변리사 멘토들과 함께였다. 아이디어의 장단점을 토론하고,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 조언과 질문이 오갔다. 법인 설립이든, 특허 출원이든 안내를 해줄테니, 언제든 다시 연락하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됐습니다.” 해커톤 행사장을 가득 채웠던 그 눈빛이다.

아차 싶었다. 결국은 창업이라는 험한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젊음이 현실 속에서 까맣게 타버리면 어쩌지. 2019년 여름 그들에게 시원한 그늘은 어디에 있는 걸까. 누군가의 힘, 돈, 연줄로 만든 배경은? 나는 비겁하게 그들의 긴 그림자 뒤에 숨어 있지 않나.
/James Jung기자 jms@decenter.kr

정명수 기자
jms@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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