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이베이 옥션에서 검은색 꽃이 그려진 카드 한 장이 우리 돈 2억 원에 낙찰됐다. 카드의 이름은 ‘블랙 로터스(Black Lotus)’. TCG(Trading card game) 장르의 원조라 불리는 ‘매직 더 게더링’에서 초창기에 출시된 한정판 카드다. 특정 카드가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를 형성하는 ‘희귀성’ 때문이다. 블랙 로터스는 1993년 당시 초기 플레이어들에게 제공된 최초의 인쇄본으로써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에 2억 원이라는 가격을 호가할 수 있었다.
최근 카드 게임 업계에서는 실물 카드에서만 존재했던 희귀성을 온라인에도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상에서 유저는 내가 가진 카드가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게임사들은 그 해답을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에서 찾고 있다.
TCG는 다른 장르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용량도 가볍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RPG(Role playing game)는 유저에게 자유도를 보장하는 만큼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복잡하다. 예를 들어 RPG에서 유저가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무기, 갑옷, 장신구 등 수많은 장비를 하나씩 갖춰야 한다. 각각의 아이템들 또한 모두 블록체인에 올려야 한다. 반면 TCG는 핵심 재화인 카드만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면 된다. 비교적 간편하다. 위니플 정재훈 사업이사는 “유저 입장에서 봤을 때 TCG는 다른 장르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아 직관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며 “블록체인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지갑을 설치하는 식의 복잡한 사전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게임 자체도 어렵다면 유저는 쉽게 흥미를 잃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발사 입장에서도 특정 카드만 NFT로 만들면 되기에 관리가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ERC-721을 기반으로 하는 NFT 기술을 적용한다면 디지털 자산에 희귀성을 부여할 수도 있게 된다. 즉 온라인상에서도 매직 더 게더링의 ‘블랙 로터스’ 같은 카드를 제작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Gods Unchained’는 NFT를 적용해 자사의 카드에 희귀성을 부여했다. ‘Gods Unchained’는 1년에 4개만 생산하는 ‘신화(Mythics)’ 카드 중 하나인 하이페리온(Hyperion)을 경매에 올렸고, 146.279 ETH에 낙찰됐다. 판매 당시 ETH 가격 기준 7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매직 더 게더링이 20년도 넘은 게임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Gods Unchained’가 판매한 온라인 카드의 높은 가격은 향후 블록체인 TCG에 거는 유저들의 기대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해당 카드의 이전 소유 이력이 남는다는 점은 블록체인 TCG만의 또 다른 흥미 요소다. 동일한 성능의 카드라 할지라도 지난 시즌 챔피언이 결승전에서 사용했던 카드라면 가격이 더욱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위니플 정재훈 이사는 “만약 프로 선수나 유명한 스트리머 같은 특정 인물이 썼던 카드일 경우 카드 자체에도 프리미엄이 붙는 현상도 발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재훈 이사는 전략에 따라 게임의 판도가 뒤바뀌는 TCG는 공정성이 중요한 e스포츠에 최적화된 분야라고 강조했다. 일반적인 게임의 경우 돈이 많은 특정 유저가 고성능의 NFT 아이템들을 현금으로 구매한다면 게임을 독식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TCG는 개별적인 카드의 성능보다 전체적인 패를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중요한 장르다. 카드별 상성도 존재하므로 항상 우월한 카드는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이사는 “TCG에서는 훨씬 더 좋은 카드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전략이 잘못되면 초심자에게 패배할 수 있다”며 “고성능 카드를 많이 보유한다 해도 게임의 승리를 보장해주지 않기에 형평성이 중요한 토너먼트가 쉽게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블록체인 게임 분야에서도 e스포츠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이사는 “향후 TCG 외에도 e스포츠를 활용한 블록체인 게임들이 등장하며 또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환영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블록체인 게임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이 완화되어 한국 게임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마음 놓고 서비스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재석기자 cho@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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