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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 스냅샷]블록체인이 게이머를 자유케 하리라


2016년 어느 날. 인기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에서 때아닌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행진은 천천히 절벽을 향했고, 그 끝에 다다르자 유저들은 한 명씩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마치 백제의 ‘삼천궁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 사건은 와우 사설 서버였던 ‘바닐라’에서 펼쳐진 퍼포먼스였다. 훗날, 이 행진은 ‘수어사이드 마치(suicide march)’라 불리며 많은 유저들에게 회자된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16년 당시 블리자드는 유저들과 불통 개발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이에 초창기 와우를 그리워하던 유저들은 사설 서버를 개설하고 초기 버전 와우를 재현해냈다. 약 10년의 시간을 되돌린 셈이다. 바닐라는 금세 본 서버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고, 큰 위협을 느낀 블리자드는 법정 소송을 준비하며 서버를 폐쇄 시켰다. 이후 가능성을 엿본 블리자드는 곧바로 자체 오리지날 버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공개된 <와우 클래식>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유저들이 사설 서버를 찾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유료 게임을 무료로 즐기고 싶거나 △개발사의 운영에 불만을 가져서다. 전자의 경우는 게임 산업에 큰 피해를 주고 있는 악질 범죄다. 사설 서버에는 별도의 구독 모델도 없고, 부분 유료화로 판매하는 과금 요소마저 조작이 가능해 개발사에 큰 피해를 준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사설 서버로 인한 피해 규모를 연간 2조 5,000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후자다. 바닐라 서버처럼 게임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개발사와의 마찰로 사설 서버를 만든 경우도 위법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유가 어떻든 별도의 서버를 운영하는 건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일이므로 엄하게 다스려야 마땅하다. 게이머 입장에선 답답할 수도 있지만, 달리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블록체인이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블록체인은 참여자 간 합의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게임 개발사가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올려서 서비스하다가 불통 운영을 일삼는다면? 유저들은 당당하게 하드포크를 감행할 수 있다. 마치 새로운 대륙을 찾아 떠나는 항해자처럼, 유저들이 저작권법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새롭게 서버를 구축하는 것이다.

노스랜드로!

블록체인으로 구축한 사설 서버에는 주목할 만한 특징들이 있다. 우선 개발사 입장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유저가 사설 서버를 구축해 모딩(Modification·게임 변형 작업)을 수행할 경우 별도의 수수료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이는 불법으로 발생하는 사설 서버 생성을 억제함과 동시에 기존 게임 시리즈의 충성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을 활용할 여지도 늘어난다. NFT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꼭 들리는 얘기가 있다. “이미 게임이 망했는데 아이템을 유저가 갖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이야?” 일각에서는 블록체인 사설 서버가 이를 해결해주리라 전망한다. 익명의 암호화폐 지갑 기업 대표는 “기존 서버에서 사용하던 NFT라면 블록체인 사설 서버에서도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렇게 NFT 아이템의 유효기간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이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암호화폐 지갑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낯선 길이다. 사업을 문제없이 운영하고 있었던 개발사 입장에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제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와우 클래식>의 출현과 그 전말에서 보듯, 유저들은 점차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주체적인 놀이문화를 구축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게임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세계관의 일부가 되길 원한다. <리니지> 혹은 <던전앤파이터>에서 제2의 바닐라 서버, 제2의 와우 클래식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게임 산업의 거대한 흐름이 변하고 있다. 아직은 태동기에 불과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서 블록체인은 게이머를 더욱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조재석기자 cho@decenter.kr

조재석 기자
cho@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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