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 상용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DCEP라는 이름의 CBDC를 발행하고, 시범운영에 나서면서 시장 선점을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중국 인민은행은 DCEP 시범 운영 성과를 발표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은 판이페이(FanYifei) 인민은행 부총재는 지난 5일 국제금융운영세미나에 참석해 "지난 1년간 진행한 DCEP 시범 운영에서 약 313만 건의 거래를 처리했다"며 "거래규모는 11억 위안(약 1,892억 원)"이라고 밝혔다. 올해 8월 기준 11만 3,300개의 개인용과 8,800개의 기업용 DCEP 전자 지갑이 개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은행은 지난 2014년부터 CBDC를 연구했다.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약 80건의 관련 국제 특허를 출원하는 등 CBDC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가속도가 붙은 건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올해 초에는 DCEP라는 명칭을 공개하고, 션전 및 슝안신도시 등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DCEP는 본원통화(M0)로 결제 및 대금 지불, 자금 예치 등에만 사용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한 금융 상품은 출시할 수 없도록 설정했다.
또 스마트폰 NFC를 활용해 돈을 주고받는 방식을 채택해,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위쳇, 알리페이 등 기존의 간편결제와 차별화를 두기 위한 전략이다.
현재 시범 도시 내 일부 호텔, 편의점, 영화관, 카페 등에서 DCEP를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슝안 신도시의 경우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외국계 프렌차이즈도 참여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인민은행은 오는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시범 운영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DCEP를 활용해 CBDC 기술 표준화를 주도하는 게 1차 목표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이가 아닌 디지털화폐로 미국과의 통화 주권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상용화 시점부터는 본격적으로 동북아시아 및 일대일로 무역 거래 국가들까지 DCEP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장(용인대 교수)은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펼치면서 위안화의 국제화가 쉽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라며 "이에 디지털화폐 시장을 선점해 기술 표준화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연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중국이 속도가 가장 빠른 것은 맞지만 유럽과 미국 등에서 DCEP를 유통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통화스와프가 체결돼 있고, 무역 거래가 많은 동북아 국가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2월 금융결제국에 '디지털화폐연구팀' 및 '기술반'을 신설했다. CBDC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로 이뤄진 기술·법률자문단 구성도 마쳤다.
올해 3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CBDC 연구는 △CBDC 설계 및 요건 정의 △구현기술 검토 △업무 프로세스 분석 및 컨설팅 △CBDC 파일럿 시스템 구축 및 테스트 등 4단계로 이뤄져 있다. 현재 기술검토를 마치고, 업무 프로세스를 분석하고 컨설팅하는 단계다.
내년부터는 CBDC 유통을 테스트한다. 다만 실물 유통이 아닌 가상 시스템을 통한 내부 테스트다. 한은은 이 테스트를 통해 CBDC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민간에서 CBDC를 실제 유통하는 방식으로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은 없다"며 "가상 환경에서 구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도 CBDC 도입을 논의 중이라고 발표했다. 포브스 등 외신에 따르면 ECB는 최근 디지털 유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향후 6개월간 도입 여부에 대한 공개 논의를 가지기로 결정했다. ECB는 유럽연합지식재산권국에 '디지털 유로'라는 명칭에 대한 상표 등록 출원서도 제출했다.
연준도 CBDC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 중이다. 다만 발행 여부에 대해서는 "확정된 바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 8월 열린 연준 주최 화상회에서는 라엘 브레이너드 이사가 "가상의 디지털화폐를 구축, 내부 실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윤주 기자 daisyroh@
- 노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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