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한 시선]은 기업 의사결정 이면에 숨겨진 ‘왜?’를 파고드는 코너입니다.
내년부터 전 세계 2,600만 개 페이팔 가맹점에서 암호화폐로 물건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지난 21일 페이팔이 비트코인(BTC)을 포함한 주요 암호화폐 결제 및 거래 서비스를 지원한다고 밝히면서 암호화폐 시장은 연일 들썩이고 있습니다.
결제 방식은 이렇습니다. 사용자가 암호화폐로 결제를 하면 중간에서 페이팔이 미국 달러 등 법정 화폐로 정산을 합니다. 판매자(상인)이 암호화폐로 정산 받는 시스템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가격 변동성이 심하고, 기존 결제 시스템에 비해 거래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암호화폐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보입니다.
이는 암호화폐 결제 시장에 진출한 기존 기업과는 조금 다른 행보입니다. 페이스북은 기존 암호화폐의 단점을 보완한 스테이블 코인 ‘리브라(LBR)’ 발행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LBR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입니다.
국내에는 이미 나와있는 결제용 코인도 있습니다. 통합 결제 시스템 업체 다날이 만든 프로젝트 페이프로토콜은 페이코인(PCI)을 발행했습니다. 편의점CU, 도미노 피자 등 페이프로토콜 가맹점에서 PCI로 결제가 가능합니다. 페이프로토콜 관계자는 “기존 암호화폐의 가격 리스크, 이체 수수료, 처리 속도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코인을 발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페이팔은 결제용 암호화폐를 자체적으로 발행하기보다는 단점을 감수하고도 비트코인 등 기존 암호화폐를 끌어안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왜 이런 전략을 취한 걸까요?
페이팔은 페이스북이 주도하는 리브라 협회에 참여했다가 탈퇴했습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6월 리브라 백서를 공개한 뒤로 전세계 규제 당국으로부터 질타를 받았습니다. 아직까지도 리브라 출시 계획은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이 같은 상황을 목격한 페이팔 입장에선 현 시점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겁니다. 우선은 기존에 나와 있는 암호화폐를 추가하는 편이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는 데 이득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30일 오전 11시 10분 코인마켓캡 기준 비트코인(BTC) 시장 점유율은 63.1%입니다. 시장 지배력이 강한 BTC 결제를 지원하게 되면 암호화폐 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큽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비트코인 생태계를 주름잡게 되면 알트코인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페이팔이 어떤 암호화폐를 지원할지 결정하는 주체가 되기에 암호화폐 생태계 내에서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페이팔이 결제 플랫폼이라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게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페이스북 이용자는 로그인을 한 뒤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기업은 사용자가 소셜 웹사이트를 이용하며 생긴 정보를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자체 암호화폐를 도입하면 이 같은 정보를 보다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이미 플랫폼에 많은 사용자가 모여 있고, 부가 서비스가 활성화돼 있기에 확장성도 큽니다. 국내 기업 카카오가 클레이(KLAY)를, 네이버 라인이 링크(LINK)를 발행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페이팔은 SNS가 아니라 결제 플랫폼입니다. 한 업계 전문가는 “SNS에선 암호화폐를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어 자체 암호화폐를 만드는 게 의미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사용자끼리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는 경우에는 암호화폐 발행이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페이팔이 암호화폐 결제를 지원한다고 해서 갑자기 많은 사람이 암호화폐로 물건을 구매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이쪽 분야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암호화폐로 결제하도록 만들려면 특별한 혜택이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페이팔은 최근 암호화폐 커스터디 업체 ‘빗고’ 인수를 추진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페이팔이 암호화폐 결제 대중화를 이끌 수 있을지 기대 됩니다.
/도예리 기자 yeri.do@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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