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한 시선]은 기업 의사결정 이면에 숨겨진 ‘왜?’를 파고드는 코너입니다.
카카오는 블록체인 계열사로 그라운드X를 두고 있습니다. 그라운드X는 자체 개발한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기반 삼아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카오는 그라운드X와는 별개로, 자체적으로도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카카오콘이 대표적입니다. 클레이튼 사이드체인을 활용하긴 하지만 카카오 관계자는 “그라운드X와는 별도로 진행하는 사업”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최근 카카오는 카카오톡 안에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담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어떤 블록체인 플랫폼을 사용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그라운드X가 개발한 클레이튼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합니다.
왜 카카오는 블록체인 계열사를 두고도, 따로 블록체인 사업을 진행하는 걸까요?
블록체인 시장은 킬러 앱이 등장하지 않은 초기 시장입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서비스를 ‘찾아야’ 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이커머스 시장에선 대표 주자 아마존 사례를 보면서 이 시장에서 어떤 서비스가 인기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커머스 사업을 시작하려는 기업가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죠. 카카오톡이란 검증된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플랫폼 비즈니스를 구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블록체인 시장에선 이렇다 할 대중적 서비스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참고할 만한 성공적 서비스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같은 초창기 시장에선 어떻게 사업 아이템을 구상할까요?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시장에 실제로 서비스를 출시해보는 겁니다. 서비스를 내놔야 시장 반응을 살피고 가설을 검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카카오콘에서 연예인 팬 카드를 발급하면 월간 활성이용자(MAU)가 00% 증가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설을 세운 뒤 서비스를 내놓는 것입니다. 그라운드X 클립에서 내부적으로 테스트 중인 ‘클립포카’ 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서비스를 기획할 때 기업 관계자들은 ‘NFT로 포토카드를 발급하면 연예인 포토카드를 수집하는 국내외 팬층이 몰려들 것이다’란 가설을 세웠을 겁니다.
이처럼 여러 개 가설을 토대로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다 보면 이 가운데 들어맞는 가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럼 해당 서비스를 주요 사업 아이템으로 삼고, 지속해서 발전시켜 나가면 됩니다. 만약 가설이 틀렸다 해도,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쌓인 데이터를 활용해 보다 촘촘한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카카오도 이러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블록체인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카카오콘 서비스, 블록체인을 드러내놓고 활용하는 그라운드X 등 여러 창구를 활용해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카카오와 그라운드X가 경쟁하고 있는 걸까요? 아직 여러 서비스를 시도해보는 시기라 경쟁을 논할 단계는 아니라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지금은 시장 크기를 키우고, 대중적 서비스를 찾는 게 먼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만약 킬러앱이 등장한 이후엔 어떻게 될까요? 카카오콘은 클레이튼 사이드체인을 활용합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유의미한 서비스가 나오면 카카오콘과 그라운드X가 개발한 디지털 자산 지갑 클립이 연동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러나 카카오 관계자는 “클립과 연동할 계획은 전혀 없고,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고 못박았습니다.
카카오콘과 클레이튼의 운명은 네이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네이버는 자회사 스노우가 운영하던 ‘잼라이브’를 인수하면서 네이버 쇼핑라이브를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잼라이브로 라이브 커머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뒤에 말입니다. 가정을 하나 해보죠. 만약 잼라이브가 실패한 모델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가설 검증 단계에서 폐기됐겠죠.
카카오콘과 클레이튼이 지금은 모회사와 자회사에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언제까지 '중복 투자'를 용인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합치거나, 둘 중 하나를 폐기하거나, 둘 다 폐기하거나. 블록체인 대중화를 꿈꾸는 카카오는 향후 어떤 전략을 쓸지 지켜볼 일입니다.
/도예리 기자 yeri.do@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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