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한 시선]은 기업 의사결정 이면에 숨겨진 ‘왜?’를 파고드는 코너입니다.
화장품 회사와 블록체인. 생경한 조합 아닌가요? 그런데 이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지난달 카카오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는 아모레퍼시픽이 카카오 퍼블릭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Klaytn)’ 거버넌스 카운슬에 합류했다고 밝혔습니다.
거버넌스 카운슬은 클레이튼의 기술, 사업 등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합니다. 합의 노드(Consensus Node) 운영도 맡습니다. 노드 운영을 넘어 클레이튼 기반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기존 사업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는 등 블록체인 사업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카카오 페이지·카카오게임즈 등 카카오 계열사, SK네트웍스·한화시스템 등 IT 회사, 넷마블·위메이드 등 게임 회사, 바이낸스·후오비 글로벌·유니온뱅크 등 금융회사 등 각 분야 29개 기업이 여기에 합류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거버넌스 카운슬에 발을 담갔습니다.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아모레퍼시픽 영업실적은 3년 연속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1.2% 감소한 4,278억 원에 그쳤습니다. 이는 전성기였던 2016년 8,481억 원의 절반 수준입니다. 지난 4분기 아모레퍼시픽 기업설명회(IR)자료를 살펴보면 실적 부진 원인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국내사업은 전년 동기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증가했습니다. 반면 해외사업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대비 49.7% 감소한 1,040억 원에 불과합니다. 해외사업 매출은 2조 원을 달성했지만, 이에 비해 수익은 내지 못한 셈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은 “해외사업의 신규 투자와 채널 확대, 마케팅 비용 증가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아시아, 유럽, 북미에 진출했지만, 해외 매출 90% 이상은 아시아 지역에서 나옵니다. 특히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중국 시장 변화에 따라 아모레퍼시픽 수익이 크게 좌우되기 마련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후 실적 부진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니스프리와 에뛰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분기 이니스프리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8% 감소, 영업이익은 22% 감소했습니다. 에뛰드는 매출액이 18% 줄었고, 영업이익은 적자 규모가 축소됐습니다. 전년 동기 에뛰드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185억 원이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그룹은 “로드숍 및 면세 채널 매출 하락으로 전체 매출이 감소했다”고 전했습니다. 온라인 채널이 강화되면서 오프라인 채널 수익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클레이튼 거버넌스 카운슬 합류는 아모레퍼시픽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해외시장 채널을 다변화하고, 온라인 채널을 강화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클레이튼에서 사용되는 암호화페 클레이(KLAY) 활용 가능성…글로벌 쇼핑몰 구상?
아모레퍼시픽이 클레이(KLAY)를 활용한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쉽게 결제 가능한 글로벌 쇼핑몰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과거 아모레퍼시픽은 이미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16년 PC와 모바일로 이용할 수 있는 아리따움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습니다. 이 쇼핑물의 가장 큰 특징은 달러나 원화로 환산할 필요 없이 27개국 화폐로 바로 결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27개국에는 중국, 홍콩, 대만, 마카오, 싱가포르 등 중화권, 말레시이시아,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국가,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불가리아, 스페인 등 유럽 국가, 인도, 아랍에미리트, 멕시코 등도 포함됐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사이트는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어떤 연유에서 이 쇼핑몰이 중단됐는지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모레퍼시픽이 결제 과정을 간소화하는 방법으로 해외시장 온라인 채널 확대를 노렸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클레이튼이 웹과 모바일 양쪽에서 사용 가능한 개인 디지털 지갑 서비스 ‘클립’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카오톡과 연동되는 클립이 출시되면 사용자는 손쉽게 클레이(KLAY)를 포함한 디지털 자산을 관리할 수 있게 됩니다.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는 “하반기에 글로벌 클립을 출시해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글로벌 쇼핑몰 사업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는 이유입니다.
만약 뷰티포인트를 클레이튼 기반 서비스로 전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글로벌 고객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올해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그룹 회장 신년사 내용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서 회장은 “‘옴니 디지털 루프’를 구현하기 위한 전사적 디지털화를 가속한다”고 밝혔습니다. 빅데이터와 디지털 마케팅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고객의 숨은 요구를 찾아내는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빅데이터 전문가인 차상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려면 데이터 수집부터 해야 합니다. 뷰티포인트 제도를 해외로 확대한다면 더 많은 고객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모레퍼시픽은 첨단 기술에 관심을 두고 관련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뚜렷한 결과물은 없습니다. 클레이튼 거버넌스 카운슬 참여로, 아모레퍼시픽은 턴어라운드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까요?
/도예리기자 yeri.do@decenter.kr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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