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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거래액 20조 암호화폐 거래소 존폐, 스타트업 직원 10명이 좌우하나

■은행연합회, 외부평가 활용 권고 논란

실명확인 계좌 발급 평가 기준

당국, 가이드라인 제시 안하자

안전성 평가 공시플랫폼 의존

암호화폐 거래소 불안감 커져



200여 개에 이르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존폐 여부가 전문 평가 인력이 10명에 불과한 스타트업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하기를 꺼려하는 금융 당국과 검증 능력이 떨어진 은행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하루 평균 거래금만 20조 원을 웃도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생사여탈권을 창업 4년 차 스타트업이 쥐고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최근 은행들에 배포한 암호화폐 실명 확인 계좌 발급 평가 기준에 외부 암호화폐 공시 플랫폼 업체의 평가를 활용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시 플랫폼 기업은 ‘쟁글’이 거의 유일하다. 앞서 은행연합회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자격 요건을 규정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의 유예기간이 오는 9월 말 종료됨에 따라 외부 컨설팅 업체를 통해 은행들이 거래소에 실명 확인 계좌를 발급할 수 있는 공동 기준을 마련했다.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인 특금법은 원화 마켓을 지원하는 거래소(가상자산 사업자)가 6개월의 유예기간 안에 은행으로부터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를 받지 못하면 사업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암호화폐를 실체 없는 자산으로 바라보는 금융 당국이 은행들의 실명 확인 계좌 발급과 관련해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자 시중은행들이 모여 있는 은행연합회가 공동 평가 기준을 만든 것이다. 이 기준에는 기존 특금법에 명시된 내용과 함께 암호화폐 거래소가 취급하는 자산(코인 등)의 안전성 평가가 포함됐다. 용역을 맡아 진행한 컨설팅 업체의 한 관계자는 “위험 평가 항목에 코인 개수, 코인의 신용도 등이 포함됐다”며 “거래소에 얼마만큼 위험한 코인이 많은가를 평가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중은행들이 수백 개에 달하는 코인의 안전성을 일일이 검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은행연합회가 각 은행들에 코인 안전성 평가와 관련해 외부 업체의 데이터를 활용하라고 권고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4월 말 기준 업비트에 상장된 코인은 178개, 빗썸은 155개다. 중복된 코인을 제외하더라도 전체 거래소로 범위를 넓히면 국내에서 거래되는 코인 수는 200개를 훌쩍 넘는다.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단언컨대 은행은 내부적으로 코인을 평가할 역량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한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유예기간 종료일은 다가오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외부 기관의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대안이 마땅하게 없으니 쟁글에서 내놓는 신용도평가(XCR)를 참고하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은행연합회의 지침을 은행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불거질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은행 실무진이 이번 지침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외부 업체로 지목된 쟁글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쟁글은 2018년 설립된 암호화폐 공시 플랫폼 기업이다. 주요 수익원은 암호화폐 관련 신용도 평가다. 쟁글은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실사·검증·감사 등을 통해 신용도를 평가하고 등급을 매긴다. 자본시장의 기업 신용 평가 회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프로젝트가 쟁글에 비용을 내고 의뢰를 하면 쟁글에서 사전 리서치 작업을 한다. 이후 프로젝트가 제공한 재무제표, 스마트 컨트랙트 오딧 리포트, 법률 의견서와 리서치 팀의 추가 질문 등을 참고해 자료를 작성한다. 이를 테면 비트코인(BTC)은 AA+, 이더리움(ETH)은 AA 이런 식으로 평가를 매기는 식이다.

쟁글의 전체 인원은 50명이지만 신용도 평가 관련 팀원은 10명에 그친다. 하루 거래액이 수십조 원에 달하는 거래소의 존폐 여부가 전문 평가 인력이 10명에 불과한 스타트업이 어떻게 평가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데 업계는 우려의 시각을 나타냈다. 실제 쟁글 신용도 평가에서 우수 등급인 ‘A’를 받았던 코스모체인은 지난해 발행량 조작 사건으로 논란이 됐다. 코스모체인은 이더리움에서 클레이튼으로 메인 체인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4억 여개의 코즘(COSM)을 공지 없이 발행했다. 쟁글은 이 프로젝트의 신용도 평가를 유료로 진행했다.

논란이 불거진 뒤 쟁글은 코스모체인의 신용도를 평가 보류로 바꿨다. 게다가 쟁글은 암호화폐 관련 주요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임에도 별도의 컴플라이언스 조직이 마련돼 있지 않다. 쟁글 관계자는 “파운더 조직이 컴플라이언스 절차를 직접 챙기고 있고 컴플라이언스 실무를 체크 및 진행하는 담당자들을 포함해 약 5명 정도가 해당 업무를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프로젝트 평가 기관이 없는 초기 시장에서 쟁글은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이 지금이라도 거래소 자격 요건과 관련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뒷짐을 지고 있으니 은행들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외부 업체의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문제가 생기면 ‘꼬리만 자르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최소한 거래소 자격 요건과 관련해서는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예리 기자 yeri.do@
도예리 기자
yeri.do@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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