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원짜리 대체불가토큰(NFT)보다 수백만 명이 거래하는 NFT가 더 중요합니다.”(김우석 라인넥스트 사업이사)
암호화폐 하락장과 맞물려 전체 NFT 거래량도 급감하며 시장이 위축됐지만 실용성을 앞세운 유틸리티 NFT는 꾸준히 발행되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인증서나 공연티켓·멤버십카드를 대체하는 유틸리티 NFT를 통해 이용자들이 효용을 체감하면서 침체된 NFT 시장의 반전을 이끌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NFT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시기는 2021년으로 당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NFT 작품이 무려 6930만 달러에 거래되며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어 잭 도시 전 트위터 최고경영자(CEO)의 첫 트윗 NFT가 경매에서 290만 달러에 낙찰됐고 프로필 NFT(PFP NFT)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클럽(Bored Ape Yacht Club·BAYC)과 크립토펑크 등도 잇따라 고가에 거래되며 NFT는 자산 시장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했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 이후 테라·루나 사태와 FTX 파산, 글로벌 긴축 등 잇단 악재 속에 가상자산 시장이 무너지자 이더리움(ETH) 등 암호화폐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NFT 가치 역시 급락했고 NFT 초기 ‘붐’을 일으켰던 디지털 예술 작품이나 PFP NFT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시들해진 모양새다.
자칫 ‘한때의 기술’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NFT 시장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은 유틸리티 NFT다. NFT 데이터 분석업체 논펀지블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NFT 거래량과 평균 가격이 모두 전 분기 대비 70% 이상 급락한 극심한 침체 속에서도 유틸리티 NFT는 2분기 연속 40% 이상 발행이 늘었다. 예술 작품이나 소장용 NFT 발행이 전 분기 대비 3~6%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확연히 눈에 띄는 수치다. 김동훈 핑거랩스 대표는 “NFT가 커뮤니티·티켓·쿠폰·멤버십 등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값비싼 예술 작품이나 수집용 PFP NFT가 세간의 관심을 NFT로 돌려놨다면 저렴하면서 대중적인 유틸리티 NFT는 본격적으로 시장을 확장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국내에서도 다양한 유틸리티 NFT들이 등장하며 저변을 넓히고 있다.
NFT 대중화를 노리는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엑스도 NFT 얼라이언스 그리드(GRID)를 구축하고 지난해 말 첫 프로젝트로 이마트24와 협업해 원둥이 NFT를 선보였다. 원둥이 NFT를 갖고 있으면 이마트24 정기 쿠폰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오픈시에서 판매된 ‘비어프린트’ NFT는 2분 만에 공개 물량 500개가 모두 팔렸는데 이 NFT를 보유하면 수제 맥주 구입시 할인을 받을 수 있고 관련 축제나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KT도 호텔 숙박권과 굿즈·상품권 등을 받을 수 있는 라온NFT를 내놓았다. 메타갤럭시아는 콘서트티켓을 NFT로 발행했는데 이 NFT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용 코드가 삽입돼 진위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발행사는 NFT 구매자에게 실물 앨범을 제공함으로써 일반 입장권과 차이를 뒀다. 실물 골드바와 같은 가치를 가지는 NFT도 등장했다. 조폐공사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골드바는 실물 기반으로 발행된 NFT로 언제든 조폐공사 금고에 보관된 금으로 바꿀 수 있다.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거래가 용이하다는 NFT의 기술적 강점이 녹아들었다. 앞서 신세계백화점이 지난해 발행한 푸빌라 NFT와 롯데홈쇼핑의 벨리곰 NFT는 마케팅 역량이 뛰어난 대형 유통사가 무료 주차권과 포인트 등 실질적 보상을 대거 제공한 덕에 국내 유틸리티 NFT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 라인넥스트가 운영하는 글로벌 NFT 거래소 ‘도시(DOSI)’에서도 맛집 탐방이나 공연 초대권을 담은 NFT가 다수 있는 등 유틸리티 NFT는 폭넓게 진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유틸리티 NFT들이 마케팅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내 대형 유통사의 한 관계자는 “유틸리티 NFT 중에는 꼭 NFT 기술이 없더라도 구현할 수 있는 사례가 많다”며 “NFT의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NFT 산업이 성장하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틸리티 NFT는 홀더(보유자)에 대한 혜택을 넘어 인프라 영역으로까지 침투하고 있다. 신영선 헬로 웹쓰리 대표는 “명품이나 예술품의 진위 여부 등을 따질 때 NFT를 활용할 수 있다”며 “꼭 거래의 대상이 아니더라도 실물 상품의 유통망을 보완하는 기술로 널리 적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롯데그룹 계열사 대홍기획은 지난해 11월 NFT 통합 솔루션 ‘나래’를 만들고 NFT에 심어진 QR코드로 입장하는 티켓 NFT, 사용 여부를 바코드로 관리하는 기프트카드 NFT 등 다양한 NFT 상품군을 취급하기로 했다. 정준영 코빗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실물과 NFT를 연계하는 시도가 계속 많아지는 가운데 유틸리티 NFT는 즉각적 효용을 주는 장점을 앞세워 실생활에 빠르게 파고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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