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른 획일적 규제로 커스터디 산업 발전이 제약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커스터디 업계의 특수성을 반영한 규제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커스터디 기업들은 고객별로 독립된 월렛을 운영하며 자산을 분리 보관하는데도 거래소처럼 이용자 가상자산 80% 이상을 콜드월렛에 보관해야 하는 의무를 적용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커스터디 기업 관계자는 "거래소는 모든 사용자의 자산이 하나의 월렛으로 통합 관리되는 반면 커스터디 기업은 고객별 분리 보관이 원칙"이라면서 "리스크 구조가 전혀 다름에도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 점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거래소는 모든 사용자 자산을 하나의 월렛에서 통합 관리한다. 이 때문에 해킹 시 전체 자산이 위험해질 수 있어 콜드월렛 보관 비율 규제가 필수적이다. 반면 커스터디는 고객별 분리 보관으로 개별 월렛 해킹 시 피해가 제한적이라 획일적인 콜드월렛 규제가 불합리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특히 기관투자가의 경우 대규모 자산 이동이나 현금화 시 콜드월렛 규제로 인한 제약이 크다. 가상자산 결제 사업을 검토 중인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커스터디 기업과 미팅을 했지만 콜드월렛에서 자산을 즉각 이동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해외 커스터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말했다. 기관투자가의 거래는 보통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 규모로 이뤄진다. 콜드월렛 자산 이동에 따른 시차로 원하는 시점에 즉각적인 거래가 어렵다. 시세 변동이 큰 가상자산 특성상 이러한 시차는 기관투자가에게 상당한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보다 유연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는 보안을 위해 자산을 콜드월렛에 보관하면서도 시장 상황에 따라 신속한 거래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처럼 콜드월렛에 자산을 둔 상태에서 거래소 거래를 먼저 진행하고 추후 정산하는 방식 등 다양한 옵션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는 "보안과 편의성은 트레이드오프 관계"라면서도 "가상자산 사업자 전체를 일률적으로 묶기보다는 거래소, 커스터디 등 분야별 특성을 고려한 규제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또 "미국은 콜드월렛 의무보관을 민간 자율에 맡기고 있고 일본은 95% 이상 강제 규정하고 있다"면서 "각국의 상황에 맞는 규제가 도입되고 있는 만큼 국내도 시장 상황과 업계 특성을 고려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제3차 가상자산위원회를 열고 법인의 가상자산시장 참여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상반기부터 법집행기관과 비영리법인·대학교 학교법인·가상자산거래소의 현금화 목적 매도 거래가 허용되며, 하반기에는 상장사와 전문투자자 등록법인 등 약 3500개 기관의 투자・재무 목적 거래가 시범 허용된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법인의 시장 참여가 본격화되는 만큼 이들의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정교한 커스터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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