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그간 제한됐던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로드맵을 13일 발표했다. 2017년 가상자산 투기 과열로 금지됐던 법인의 시장 참여가 8년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금융위는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3단계로 나눠 순차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우선 올해 상반기에는 법집행기관과 비영리법인, 가상자산거래소의 현금화 목적 매도거래가 허용된다.
검찰·국세청·관세청 등 법집행기관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계좌발급이 시작됐다. 실제로 지난 1월 기준 이들 기관의 실명계좌는 202개(검찰 10개, 국세청 182개)로 확대됐다. 지정기부금단체와 대학교 등 비영리법인은 2분기부터 실명계좌 발급이 가능해진다.
하반기에는 보다 적극적인 시장 참여가 허용된다.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 중 금융회사를 제외한 상장회사와 전문투자자 등록법인(약 3500개사) 대상으로 투자·재무 목적의 매매거래가 시범 허용된다. 이들 기업은 금융투자상품 잔고 100억원(외감법인은 50억원) 이상을 보유한 곳들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이용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고, 해외 주요국들이 법인의 시장 참여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며 정책 전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EU, 영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 최대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경우 기관투자자 거래 비중이 약 80%에 달한다.
다만 금융위는 법인의 시장 참여 확대에 따른 리스크 관리를 위해 보완조치도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자금세탁방지를 위해 은행의 거래 목적 및 자금 원천 확인이 강화된다. 또한 해킹 등 보안 위험 방지를 위해 제3의 가상자산 보관·관리기관 활용이 권고되며, 투자자 보호를 위한 공시도 확대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금융회사의 경우 이번 허용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금융-가상자산 간 리스크 전이 우려와 글로벌 건전성 규제 정비 논의가 진행 중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금융권의 토큰증권(STO) 발행 지원이나 블록체인 분야 투자 확대 등 다양한 정책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전문투자자가 아닌 일반 법인의 경우에는 가상자산시장 상황과 시범운영 결과를 분석한 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2단계 입법과 외환·세제 등 관련 제도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번 로드맵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 닥사(DAXA) 등 관계기관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법인 유형별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할 방침이다.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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