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이 제2, 제3의 드루킹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댓글을 조작해 여론몰이를 한 ‘드루킹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면서 재발 방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위변조가 불가능하고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이 댓글조작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내비치지만, “아직 기술적으로 미흡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댓글 실명제를 할 경우, 블록체인 기술로 인증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치·사회적 현안이 있을 때마다 포털사이트의 댓글을 장악해 여론을 호도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댓글 실명제 등 각종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를 주도한 ‘드루킹’은 ‘매크로 프로그램’(여러 개의 댓글이나 추천 등을 자동으로 반복하도록 명령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기술적으로 댓글을 조작했다. 일각에서는 매크로가 포털 사이트의 자체 방지 소프트웨어까지 뚫을 수 있어 댓글 실명제 등을 포함한 각종 인터넷 규제로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움직임에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댓글 실명제(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가 주목 받고 있다. 이 법안은 ‘하루 이용자 1,000 만 명 이상인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댓글 서비스에서 본인 확인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에서는 규제가 아닌 기술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공지능(AI)·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보다 고차원적이고 근본적인 방지책을 요구하면서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댓글 조작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블록체인 기술로 댓글 조작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세계 3대 비트코인 라이트닝 네트워크 개발 업체로 평가받고 있는 블록스트림(Blockstream)의 샘슨 모우 최고전략책임자(CSO)는 디센터 기자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현재까지의 블록체인 기술로는 드루킹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댓글 조작 및 여론몰이를 예방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기술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제한 뒤 “블록체인의 개념 자체가 위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 모든 정보가 깨끗한 상태로 보존되고 전송될 것이라고 보장하는 기술이 현재 단계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지금의 블록체인 개발 수준에서는 댓글 또는 클릭 수 조작을 막을 길이 없다. 최근 터진 삼성증권 사태는 양측 간의 거래와 관계된 것으로 블록체인 기술로 차단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드루킹 사건은 ‘탈중앙화된 개개인의 신원(decentralized identity)’과 관련된 문제로 아직 대형 포털까지 확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기술로는 소규모 온라인 리뷰 사이트 정도에서만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모우 블록스트림 CSO는 “현재 수준에선 익명의 개인이 충분히 조작할 수 있는 온라인 리뷰 사이트 정도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할 수 있다”며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것일 뿐, 현재로서는 개개인이 수정하거나 조작한 사항에 대한 기록을 모두 처리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국내 다른 전문가들도 모우 CSO와 같은 입장이다. 퍼블릭 블록체인(Public Blockchain)과 프라이빗 블록체인(Private Blockchain)의 개발 한계를 이유로 “포털사이트에 블록체인이라는 아이디어는 도입할 수 있다”며 “그러나 기술적 한계 등으로 여러 애매한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블록체인은 공개형인 퍼블릭과 폐쇄형인 프라이빗으로 나눈다. 퍼블릭은 데이터베이스가 공개돼 있어 누구나 데이터를 보거나 입력하거나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 사용자에 대한 정보는 비공개가 원칙이어서 댓글조작 방지를 위한 실명제 도입과는 배치된다. 반면 프라이빗은 신원이 보장된 사람만 쓸 수 있어 누군지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심사가 까다롭고 제한된 블록 숫자와 관리자로 인해 상대적으로 데이터 위변조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아무튼 블록체인 기술로 포털 사이트의 댓글 조작을 막기 위해선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듯 하다. /김연지 인턴기자 yjk@decenter.kr
- 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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