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블록체인 관련 협회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대한민국 블록체인 생태계가 ‘합리적인 규제, 제대로 된 정보, 지켜야 할 가이드 라인’도 없는 3무(無)의 공황 상황에서 협회마저 산발적으로 실효성 없는 자율규제안만 쏟아내면서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분오열 쪼개진 협회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통합하거나 협업을 통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27일 SK텔레콤 등이 참여하는 오픈블록체인산업협회가 창립하면서 국내 블록체인 단체는 지난해 12월 생겨난 한국블록체인협회와 블록체인산업협회, 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등 총 4개로 늘었다.
협회들은 블록체인 생태계를 육성하고 시장자율 기능을 회복하겠다며 활동방향과 규칙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정부와는 교감이 없어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블록체인 관련 단체들은 생태계 자율 규제안 마련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지난 달 17일 한국블록체인협회는 투명한 거래소 운영을 위한 자율규제안을 발표했다. 사흘 뒤에는 한국블록체인산업협회가 ICO(암호화폐공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러나 협회가 내놓은 규제안은 정부와의 소통은 물론 회원사들간의 합의도 얻지 못해 아무런 효과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자율규제를 강제할 수단이나 이를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이 없어 “발표를 위한 발표에 그쳤다”는 내부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블록체인협회에 가입한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네스트는 지난 달 4일 대표와 임원진이 긴급 체포된 후 협회를 탈퇴했다. 협회 회원사들도 불만이 많다. 한 중견거래소 관계자는 “협회 가입은 실질적 혜택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단 금융위원회가 바라보는 시선과 투기성 논란 등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며 “협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규모가 작은 거래소는 협회에 가입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소형 거래소 관계자는 “여러 협회에서 연락이 온다”며 “소규모 거래소 입장을 대변할 협회는 찾기가 힘들어 가입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협회는 나름대로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최근 ‘거래소의 안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통한 시장질서 확립과 이용자 보호’를 골자로 하는 거래소 규제안을 제시했다. 회원사들끼리 모여 건전한 시장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전하진 자율규제위원장은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손을 놓고 있다”며 협회가 정부 대신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자율규제를 만들어 정부에 규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블록체인산업협회도 ICO(암호화폐공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스스로 “가이드라인일 뿐 강제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부에서는 협회의 활동이 몇몇 큰 기업의 입장만 대변한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회 위원 명단에 전수용 빗썸 대표와 김지한 한빗코 대표 등 대형거래소 임원이 포함돼 있고, 협회 가입 기준도 자본금 30억원 이상으로 제한해 뒀기 때문이다. 중소사 입장에서는 가입비 부담도 크다.
오픈블록체인산업협회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 LG유플러스, 신한은행 등 시장지배력이 있는 대형 업체 위주로 구성돼 있어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회비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사실 블록체인 협회가 우후죽순 생기고 실효성 없는 규제안이 쏟아지는 것은 정부가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ICO 전면금지” 이후 이를 실행하기 위한 가이드라인도, 법도 제시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더 늦기 전에 블록체인 산업과 암호화폐,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입장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며 “협회들도 자기 밥그릇만 챙길 것이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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