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전이 끝나고 8강 대진표가 완성됐다. 유럽 6팀과 남미 2팀이 4강 그리고 우승컵을 향해 6일부터 불꽃 튀는 승부를 펼친다. 전 대회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 4강에 오른 팀 중에서는 브라질만 유일하게 8강까지 살아남았다. 역시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듯 하다.
한국은 안타깝게도 예선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한국이 속한 F조의 순위를 재미있게 분석한 글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 글에서 F조 1위는 ‘세계 1위를 이긴 두 팀을 이긴 팀’이 차지했다. 2위는 ‘세계 1위를 이긴 팀을 이긴 팀’이고, 3위는 세계 1위를 이긴 팀이 됐다. 그래서 꼴찌는 세계 1위의 몫이 됐다. 결국 세계 1위를 꼴찌로 만들고 세계 1위를 이긴 팀들로 새롭게 순위를 매긴 셈이다. FIFA 랭킹 1위 독일에게는 수모스러운 일이지만, ‘축구공은 둥글고 모두에게 기회는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의미 있는 해석이다.
그럼 이제 다른 시나리오를 하나 써 보자.
만약 2018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렸다면 어땠을까?
경기장은 2002년 한국, 경기력은 2018년으로 가정해 보는 것이다. 2018년의 한국팀이 한국 경기장에서 홈 어드벤티지를 안고 스웨덴, 멕시코, 독일과 차례로 F조 예선 경기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선 1차전 스웨덴과의 경기는 0대0 무승부가 됐을 듯하다. 홈 어드벤티지를 감안하면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패널티킥(PK)은 선언이 안 됐을 가능성이 높다. 2002년 월드컵 때 김남일 선수가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 간다”라며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설명했다.
2차전 멕시코와의 경기는 1대1 무승부 또는 1대0 승리가 됐을 듯하다. 우선 후반전의 골은 당연히 반칙이 선언됐을 것이다. 그럼 골이 성립이 안 된다. 또 전반전에 패널티킥이 선언되는 상황도 자세히 보면 수비수가 슬라이딩으로 넘어지면서 상박(어깨에서 팔꿈치까지의 부분)에 공이 닿았다. 개최국인 홈팀이기에 심판은 재량으로 “고의성이 없다”며 핸드링 반칙을 선언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3차전 독일과의 경기는 선수들의 투혼만큼 멋진 경기였고, 이겼으니까 그대로 결과를 적용해도 된다.
시나리오를 종합하면 최소한 1승 2무로 당당히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고, 8강을 노려봤을 것이다.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월드컵 개최국이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사례가 없다고 한다. 이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반증하는 것이다. 비단 축구만이 아니다. 모든 스포츠에서 홈 어드벤티지는 이미 기정사실이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공격해 오는 자기보다 크고 강한 적(도둑 또는 다른 짐승)과 당당히 맞선다. 자기 집이라는 친숙함과 지형지물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당당함에서 오는 이점은 일상생활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블록체인 산업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무역 강국으로 당당한 경쟁력을 갖는 데는 정보통신산업이 큰 역할을 했다. 다만 반도체, 가전, 스마트폰과 같은 하드웨어분야의 경쟁력 때문이었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안타깝게도 경쟁력이 약하다. 세계 시장에서 손 꼽히는 소프트웨어 제품이나 서비스가 하나도 없다. 한국은 그저 글로벌 서비스의 테스트 베드이자 좋은 시장일 뿐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기반의 블록체인 산업에서 같으면서도 다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도와 암호화폐에 대한 열기는 하드웨어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 그런데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소프트웨어처럼 글로벌 경쟁력이 없다.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는 쇄국 정책에 가깝다.
해외 기업들은 앞다퉈 한국에서 대규모 밋업 행사와 에어드롭(Air Drop·무상으로 암호화폐를 나눠주는 일종의 판촉행위)을 진행하면서 한국 투자자들의 관심과 함께 한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은 규정의 미비와 규제로 인해 외국으로 나가 ICO(Initial Coin Offering· 암호화폐공개)를 진행한다.
한국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해외에서 ICO를 진행한다. 아까운 시간과 돈을 들여 남의 배를 채워주는 ICO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산업과 생태계에 쏟아부어야 할 혜택이 줄줄이 세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왜 ICO를 남의 집에서 하라고 내쫓고 있을까? 우리 집 마당에서 시작 하면 정말 큰 문제가 있는 것일까? 정부의 ‘ICO 모르쇠 정책’ 때문에 창의적 스타트업들이 뜻을 펼쳐볼 기회조차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근대사에서 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조선의 운명에 결정타를 준 것처럼, ICO를 금지하고 있는 지금의 정책이 ‘21세기판 쇄국 정책’으로 역사에 남을까 걱정스럽다. 물론 정부가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블록체인이라는 엔진과 엔진을 돌리는 연료인 암호화폐를 분리 시키기 힘든 초기 단계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ICO의 가능성과 장점도 받아 들여줬으면 한다.
모두가 알 듯이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유리하다. 블록체인 산업도 자기 집에서 유리하게 준비해서 밖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 우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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