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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발행사, ETH 가격 하락에 재무건전성 악화 우려

암호화폐 고점이던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2월 총 496건 ICO 진행

ETH 가격 5월 이후 지속 하락…암호화폐 자산 보유 프로젝트, 재무건전성 위험 노출

다수 프로젝트, BTC·ETH로 자산 보유

BTC·ETH 하락하면서 보유 자산가치도 급감

'ETH가격하락→암호화폐 발행사들 패닉셀→ETH 가격 추가 하락→업체 보유자산 축소' 악순환

장기계획 수정 필요할 수도…투자자에 재무 상황 공개 의무 없어


올해 ICO를 진행한 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팀의 A대표는 이더(ETH) 가격하락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ICO 당시 ETH를 조달했지만 이후 이더가격이 3분의 1토막 가까이 나면서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이더 가치도 함께 떨어졌기 때문이다. A 대표는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그만큼의 암호화폐를 장외거래(OTC)시장에서 팔면서 운영해왔다”며 “지금은 가격이 크게 떨어진 ETH 때문에 어떻게 암호화폐 자산을 운용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BTC)과 이더(ETH)의 가격 급락이 ICO를 진행한 암호화폐 발행사들의 재무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암호화폐 가격이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커플링(Coupling) 현상이 계속되면서 자체 토큰의 가치도 하락해 이중고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대다수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ICO를 통해 BTC와 ETH를 조달한다. 자체 토큰 역시 가치를 띠게 되면서 자금 원천이 된다.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된 프로젝트 토큰은 파트너십·마케팅을 진행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때론 현금으로 팔아 운영자금으로 쓰기도 한다. 암호화폐 발행사 입장에서는 결국 BTC와 ETH, 자체 발행 토큰이 운영자금이다.



지난 5월부터 BTC와 ETH를 포함한 대부분의 암호화폐 가격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면서 이들 프로젝트의 재무 상황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한석 인슈어리움 대표는 “기존 사업이 있는 상황에서 리버스 ICO를 추진한 곳과 법정화폐로 일부 ICO 투자를 받은 곳은 상당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금을 운용할 충분한 여유가 있다”면서도 “다만 이 같은 경우나 암호화폐를 모두 현금화해 변동성 노출을 피한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암호화폐를 높은 비중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5월 초를 기점으로 ETH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 출처=코인원 캡처



◇이더 가격 급락에 다수 발행사 ‘공황매도’ =

암호화폐 발행사들이 ETH 가격 하락에 따른 자산 보유가치 감소를 피하기 위해 공황매도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TH 가격이 떨어지자 발행사들이 ICO 당시 확보한 ETH를 팔고, 이는 다시 ETH 가격의 하락을 불러와 발행업체의 건전성이 악화하는 일종의 악순환 고리에 빠진 셈이다. 실제 27일 코인원은 보고서를 통해 ETH의 갑작스러운 가격 하락이 ETH를 보유한 다수의 ICO 프로젝트들의 공황매도(Panic Selling)을 유발했다고 봤다. 이 공황매도가 나선 효과(spiral effect)를 일으켜 추가적인 가격 하락을 불렀다는 게 코인원 리서치센터의 분석이다.

업체들이 ETH 처분에 나서면서 비용부담 등에도 불구하고 장외거래(OTC) 수요는 늘어나는 분위기다. 그동안 프로젝트가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바꾸지 않은 배경으로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 △환전 시 비용 발생 △암호화폐 자산 운용에 대한 기준 미비 등이 꼽힌다. OTC 시장에서 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 바꿀 때 수수료가 수 천만원에서 수 억원 발생하며, 일부 지역에선 부가가치세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조원희 딜라이트 변호사는 “암호화폐 환전거래를 할 때 싱가포르에선 상품·서비스세 7%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그는 “암호화폐 변동성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OTC 마켓을 활용하는 것은 큰 추세”이며 “일부 거래소에선 이미 OTC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8년 ICO를 통해 모집된 금액을 달러로 표시한 그래프 / 출처=ICODATA.IO 캡처

◇ 장기계획 수정 불가피할 수도…재무 현황 공개 의무는 없어=

ICO 정보 사이트인 트랙ICO(TrackICO)에 따르면, 암호화폐 가격이 높은 가격대에 형성됐던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2월에 496건의 ICO가 진행됐다. 당시 BTC는 1,200만원에서 2,000만원대, 그리고 ETH는 100만원에서 200만원대에 가격이 형성됐다. 최근 가격대인 750만원(BTC)과 31만원(ETH)보다 적게는 두 배, 많게는 7배 이상 높은 가격에서 ICO가 진행된 셈이다. ICO의 투자 유치용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ETH의 가격은 지난 5월 93만원을 고점으로 계속 하락했다. 만약 올해 1월 100억원 규모의 암호화폐를 ICO를 통해 자금을 모집한 후 법정화폐로 바꾸지 않았다면, 현재 그 가치는 50억원 밑으로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암호화폐 발행사들이 ICO에 앞서 장기 계획을 세울 때 암호화폐 가격 급락 시나리오를 고려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말 암호화폐 호황기에 ICO를 진행한 프로젝트의 관계자는 “기획, 마케팅, 개발 등 다양한 부문에서 대규모 채용을 진행한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요소들이 지금은 프로젝트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암호화폐 가격 하락뿐만 아니라 더딘 서비스 개발 속도도 프로젝트의 예산에 부정적인 요소”라고 덧붙였다.

암호화폐 발행사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고 있지만 정작 ICO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은 팀의 재무 현황을 정확하게 살펴보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발행사들은 재무현황을 외부에 공개할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정재욱 주원 파트너 변호사는 “투자자가 재무상황에 대한 정보를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프로젝트 팀이 법적으로 공개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심두보기자 shim@decenter.kr

심두보 기자
shim@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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