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비트코인을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으로 보고, 범죄 수익으로 몰수한 판결은 이후 ‘재산적 가치’에 관한 법률 해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21일 디센터와 법무법인 바른, 동인, 디라이트, 주원, 광화, 한별이 서울 강남구 마루180에서 개최한 ‘제5회 디센터 콜로키움’ 행사에서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국내 법원 판결로 본 2018년 암호화폐 세상’을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그는 지난 5월 비트코인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자본시장법상 집합투자에 관한 조항을 해석하는 데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시사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30일 불법 음란물 사이트 운영업자가 음란물 이용료로 비트코인(BTC)을 받아 챙긴 것을 ‘재산적 가치’가 있는 범죄 수익으로 판단, 몰수 가능한 재산으로 봤다. 자본시장법을 암호화폐 관련 사례에 적용할 경우 이 판결을 참고할 수 있다는 게 정 변호사의 설명이다.
자본시장법 제6조 제5항에 따라 집합투자에 해당하려면 2인 이상 투자자로부터 모은 금전 등을 재산적 가치가 있는 ‘투자대상자산’을 취득하거나 처분하는 등의 방법으로 운용한 뒤 그 결과를 투자자에게 배분해야 한다. 이때 ‘금전 등’은 금전이나 그 밖의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투자자로부터 암호화폐를 모았을 때 해석상 문제가 생긴다. 정 변호사는 이에 대해 “비트코인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한 판결이 자본시장법에서 암호화폐의 가치를 판단할 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정 변호사는 5월 판례와 관련, 비트코인 몰수 이후 처분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비트코인을 몰수했다면 어떻게 처분할지가 문제”라며 “공매 절차를 밟는 게 일반적이지만, 국가가 비트코인을 공매하면 암호화폐 판매가 제도권에 포섭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형사상 몰수가 가능하다면 민사 절차상 강제집행이나 가압류 등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전자지갑 주소나 프라이빗 키를 강제로 제출하게 할 것인지, 제출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비트코인 몰수 판결 외에도 암호화폐 대상청구 판결에 대해 다뤘다. 대상청구란 어떤 물건을 인도해달라고 하면서 인도를 이행할 수 없을 때에 대비해 그 물건의 가액에 상당하는 금액을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0월 부산지방법원은 암호화폐를 대상청구한 사안에 대해 “인도를 하지 못할 경우 피고는 원고에게 사건변론종결 당시 암호화폐 시가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대해 정 변호사는 “향후 ICO(암호화폐공개)에 대한 법적 분쟁에서 활용될 수 있는 판례”라고 주장했다. 대부분 ICO 투자의 경우, 이더리움(ETH)을 지급한 뒤 프로젝트 자체 발행 토큰을 받게 된다. 이때 프로젝트 측으로부터 토큰을 받지 못하면 당초 투자한 금액을 반환받아야 하는데, ETH의 시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정 변호사는 “법원이 사건변론종결시에 맞춰 시가를 판단한 전례를 참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접속 장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판결도 언급됐다. 원고가 거래소 접속 장애 탓에 암호화폐를 특정 시점에 매도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한 사안이다. 정 변호사는 이 같은 손해배상 청구는 입증 과정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거래소에 책임을 묻는 것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고는 접속 장애가 거래소 과실이라는 것, 접속 장애 시점에 암호화폐를 매도하려고 했었다는 것, 매도하려던 시점에 매수하려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 등을 입증해야 하는데 사실상 입증이 불가능하다”며 “앞으로도 거래소 접속 장애로 인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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