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플라이체인(상품 공급망)’은 블록체인 기술이 잘 쓰일 수 있는 유망 분야로 꼽힌다. IBM은 블록체인 기반 서플라이체인을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으며 월마트 등 유통 대기업들이 IBM과 제휴를 맺으면서 시장도 확대되는 추세다. 가드너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서플라이체인 리더들은 블록체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이 서플라이체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비즈니스 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 역시 “블록체인 기술이 서플라이체인에 사용되는 사례는 향후 5년 간 급격히 늘어날 것이며, 서플라이체인 시장 규모는 2017년 4100만 달러에서 2024년 6억67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에도 서플라이체인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 적용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템코(Temco)는 최근 육류 배송 스타트업 육그램(6gram)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블록체인 기반 서플라이체인 사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육류 배송과정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 유통 상황을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전략이다. VR(가상현실) 기술로 가구 배치를 돕는 ‘홈플랫폼(Home Platform)’, 미술품 공동소유 플랫폼 ‘아트투게더’ 역시 템코의 파트너다. 모두 유통 과정의 투명성이 필요한 제품군이다.
◇블록체인 기술 활용에서 서비스까지…템코의 ‘투명거래’ 도전= 윤재섭 템코 대표는 지난해 12월 28일 기자와 만나 “상품 유통과정에서 연결이 단절됐던 곳을 다시 잇는 게 목표”라며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서플라이체인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템코와 제휴를 맺은 기업들은 템코 블록체인에 기록된 유통과정 데이터를 경영에 활용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은 구매 상품의 정보와 유통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좀 더 투명한 전자상거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템코는 자체 토큰이코노미도 구축했다. 소비자들은 상품 리뷰를 작성하거나 불량품을 신고하는 등 플랫폼에 기여할 경우 템코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기업 역시 데이터를 공유하면 포인트를 받고, 이 포인트는 템코 토큰으로 전환 가능하다. 템코 토큰은 플랫폼 내 마켓에서 상품을 구매하거나 스마트컨트랙트를 이행하는 데에 쓰인다. 윤 대표는 “이런 토큰이코노미가 잘 돌아갈 경우 명품 시장에서 불량품을 걸러내고, 좋은 상품을 구입하는 데에도 적절히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토큰이코노미는 템코만의 차별화 포인트이기도 하다. 다른 블록체인 기반 서플라이체인 프로젝트들이 유통 과정의 투명성을 추구하는 데에만 중점을 뒀다면, 템코는 서비스 부문까지 나아간 것이다. 윤 대표는 “기업들은 템코로부터 데이터 분석 툴을 제공 받고, 소비자들은 유통 정보 추적뿐 아니라 템코 플랫폼 내에서 상품도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초의 ‘비트코인 디앱’, 어떻게 가능했나= 템코의 차별화 전략은 하나 더 있다. 비트코인의 첫 번째 ICO 디앱(DApp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이라는 점이다. 템코는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플랫폼화한 RSK 플랫폼을 기반으로 앱을 개발했다. 그간 이더리움이 최초의 플랫폼 블록체인으로 간주되고, 비트코인이 플랫폼으로서 기능하지 못했던 것은 비트코인 스크립트가 반복 명령어를 쓸 수 없는 튜링 불완전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RSK 프로젝트는 튜링 완전성을 가진 비트코인 사이드체인을 개발함으로써 비트코인을 플랫폼화했다.
윤 대표는 “블록체인 플랫폼은 많은데 개발자를 위한 개발 툴이나 커뮤니티가 잘 형성된 플랫폼은 많지 않다”며 “스마트컨트랙트 툴을 활용하기엔 이더리움이 효율적이지만 Gas비(수수료)가 비쌌다”고 말했다. 그는 “RSK는 이더리움에서 스마트컨트랙트 툴을 차용해왔기 때문에 개발이 용이하고, 이미 잘 형성돼있는 비트코인 네트워크도 활용할 수 있다”며 “거래 처리 속도도 빠르고, 수수료도 이더리움에 비해 훨씬 싸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RSK를 기반으로 디앱을 개발하려는 프로젝트는 현재 60개 정도 있지만, 템코는 RSK와 정식 파트너십을 체결한 첫 번째 ICO 프로젝트다.
이런 차별화 덕분에 템코는 한국투자파트너스를 비롯해 파운데이션엑스, 블록노드커뮤니케이션즈 등 유명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윤 대표는 “템코도 블록체인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세 하락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투자파트너스와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1900만달러(약 214억원) 규모 토큰 세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오라클 문제 등 해결 방법 제시= 템코 역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먼저 블록체인의 영원한 숙제인 오라클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오라클 문제란 블록체인 밖 데이터를 블록체인 내부로 가져올 때 생기는 정보의 신뢰성 문제를 말한다. 상품의 유통과정을 블록체인으로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해도, 상품에 관한 데이터를 블록체인으로 가져오는 일은 결국 누군가가 맡아야 한다. 이 단계에서 조작이 발생할 수 있다.
윤 대표는 “현존하는 기술로는 오라클 문제를 완벽히 풀 수 없기 때문에 문제를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라며 “벤더 검증 시스템(VVS)을 통해 검증된 상품 공급사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라클 문제를 방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블록체인 상에 상품 정보를 올릴 때 회사 정보도 엮어 넣음으로써 추가 관리도 한다”고 덧붙였다.
토큰이코노미의 진입장벽을 없애는 일 또한 중요하다. 좋은 토큰이코노미를 설계했더라도, 전자지갑 생성 같은 진입장벽이 있을 경우 참여자를 확보하기 어려운 탓이다. 윤 대표는 “RSK에서 지갑 주소를 닉네임으로 설정할 수 있게 하는 등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지원을 한다”며 “그래도 토큰 활용 자체에 진입장벽이 있기 때문에 토큰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페이백 이벤트 등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템코의 향후 목표는 투명한 서플라이체인 연합을 형성하는 것이다. 윤 대표는 “단순히 유통망을 투명하게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기업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데에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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