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발행에 속도를 내고 세계 각국이 CBDC 연구에 돌입한 가운데, CBDC가 보편화될 경우 기존 암호화폐와 공존할 수 있을까? 비트코인(BTC) 등 탈중앙성을 확보한 암호화폐나 확실한 유틸리티를 가진 암호화폐는 살아남겠지만, CBDC와 역할이 비슷한 결제형 스테이블코인 등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화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화폐로서의 기능은 온전히 보전해야 한다. 화폐의 가장 큰 기능은 교환의 매개, 즉 결제 및 송금 수단이다. 이미 알리페이, 위챗페이 같은 디지털 결제 시스템에 익숙한 중국 국민들이 DCEP를 결제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14억 인구가 쓰는 결제 수단은 전 세계로 퍼져나갈 가능성도 크다. 중국이 DCEP 발행으로 목표하는 것 중 하나도 ‘위안화의 국제화’다.
암호화폐 중에서도 같은 기능을 목표로 하는 코인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이다. 암호화폐와 암호화폐 간 거래에 쓰이는 테더(USDT) 같은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테라(Terra) 같은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는 일상생활에서 결제용으로 쓰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페이스북의 리브라도 일종의 결제용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다. 이 같은 코인들은 모두 민간기업에서 발행한다.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지, 지급 보증은 확실한지 걱정해야 하는 민간기업의 스테이블코인에 비해 CBDC는 매력적이다. 중앙은행이 직접 보증하며 지급불능 위험도, 파산 위험도 없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CBDC는 중앙은행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며 “충분한 신뢰를 쌓지 못한 결제용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가 CBDC 발행 이후에도 제대로 자리 잡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CBDC와 견줄 수 있는 암호화폐가 있을지 생각해봤을 때 결제 쪽 암호화폐가 가장 타격을 받기 쉽다”고 덧붙였다.
물론 민간기업의 암호화폐도 장점은 있다. 결제용 스테이블코인 또는 결제용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은 블록체인 기술로 절감한 수수료를 사용자에게 환원한다는 구상으로 사용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할인 혜택에 매력을 느끼는 사용자가 신용카드나 모바일 페이 대신 암호화폐 결제를 선택하는 식이다. 다만 프로젝트들이 이 같은 운영방식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또 CBDC가 보편화될 미래를 대비해 ‘사용할만한 이유’를 마련하는 게 관건이다.
반면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같은 대중화된 암호화폐는 탈중앙성과 익명성, 검열저항성을 토대로 한다. 누구나 블록체인 상에서 거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지만, 거래가 이루어진 지갑이 누구 소유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런 특징은 CBDC가 위협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담 백(Adam Back) 블록스트림 CEO는 지난해 11월 코인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암호화폐의 장점은 검열에서 자유롭고 탈중앙화되어있다는 것”이라며 “중국의 중앙화된 CBDC는 사용자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트코인처럼 탈중앙화를 구현한 암호화폐는 CBDC에 구애받지 않고 존재 가치를 지닌다는 주장이다.
블록체인 서비스 내에서 확실한 역할을 하는 유틸리티토큰이나 실물자산을 토큰화한 증권형 토큰도 CBDC와 공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각자의 가치를 잘 보전해야 한다. 한대훈 연구원은 “비트코인이나 확실한 유틸리티토큰, 증권형 토큰 등은 CBDC가 발행되어도 괜찮겠지만, 사용자층을 확보하지 못한 알트코인은 CBDC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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