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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Now] 과거에 갇힌 '코인 시선'···19세기 '붉은 깃발법' 떠올라

■혼돈의 암호화폐

美, 제도권 포용해 위험 관리하며 육성 움직임

테슬라 등 결제수단 활용…월가, 투자자산 편입

3년 전보다 수급주체 변화·시장 체력 다져졌지만

韓은 주무부처 없이 '변양호 신드롬'에 책임 떠넘겨

경직된 접근으로 '으름장' 놓기 바빠…시장혼란 가중

"뉴노멀에 유연한 대응, 가이드라인 제시 필요"



“이럴 바에는 차라리 당국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규제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암호화폐 시장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이같이 답답함을 토로했다. 업계를 관할할 주무 부처도, 준수해야 할 법률도 없는 상황에서 해외 사례를 뒤져가며 자율 규제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시장 혼란의 모든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라도 있다면 이에 맞춰 움직일 텐데 정부 부처들은 관련 법이 없다는 이유로 업계를 이끌 생각은 없고 문제가 생기면 다같이 모여 ‘으름장’을 놓기 바쁘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불만도 마찬가지다. 투자 금액을 보전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달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2일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보여주듯 여전히 투자자들을 ‘투기 세력’ ‘철 없는 아이’로 보호할 필요가 없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암호화폐 사업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미국·스위스 등 선진국들의 움직임과 대비된다. 미국은 2015년 8월 비트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했다. 비트라이선스는 뉴욕주에서 암호화폐 관련 사업을 하기 위해 취득해야 하는 면허로 뉴욕주금융감독국(NYDFS)이 운영하고 있다. 비트라이선스를 취득하려면 고객 자산 보호, 자금 세탁 방지 규정 준수,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 지정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렇다고 NYDFS가 업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니다. 등록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업계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2019년부터 비트라이선스 시스템을 개선했다. 지난해 NYDFS는 기존 비트라이선스 허가 업체와 공동으로 신규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라이선스 발급을 조건부로 완화했다. 업계와 소통하며 제도를 개선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시는 한발 더 나아갔다. 공무원 급여를 비트코인으로 주고 세금도 비트코인으로 걷는 ‘비트코인 친화 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시는 민관 파트너십을 체결해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프랜시스 수아레즈 마이애미시장은 “암호화폐는 앞으로 몇 년간 최대 화두가 될 것”이라고 비트코인 친화 도시를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14일 미국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에 상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혁신 기술과 산업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스위스의 추크시 역시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납부하기 시작했다. 추크주는 평소 암호화폐에 친화적인 정책으로 ‘크립토 밸리(Crypto Valley)’로 불려왔다. 추크시의 암호화폐 세금 납부에 대해 업계는 “블록체인 선진국인 스위스가 또 한번의 혁신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5년 넘게 암호화폐와 관련한 주무 부처를 정하지 못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가 최근 “금융위가 주무 부처”라고 밝혔지만 금융위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잘해도 티는 나지 않고 사고가 한 번이라도 터지면 줄줄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 주도의 태스크포스(TF)가 처음 구성된 게 2016년 말이지만 여전히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이 부처 사이에 팽배하다. 이쯤 되면 관료들의 잠재의식에 깔려 있는 ‘변양호 신드롬’이 암호화폐 업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와 미국에서 다양한 암호화폐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는 이기홍 스트롱벤처스 대표는 “성실한 사업자가 법을 지키면서 사업을 영위하도록 하려면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줘야 한다”며 “(한국 정부는) 별로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암호화폐 시장도 이를 잘 알고 있다. 2017년만 해도 우리나라 거래소들이 암호화폐 가격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미국에 주도권을 내줬다. 우리 정부가 아무리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경고하고 으름장을 놓아도 결국 시장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국제 암호화폐 거래 가격이다. 최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가격이 출렁였던 것도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부자 증세’ 검토 소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자본이득세는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게 부과되는데 연소득 10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의 경우 최대 세율인 20%를 부담한다. 사실상 소득세보다 부담이 적다. 이런 이유로 자본이득세의 최대 세율을 39.6%까지 올려 부자 증세를 실현하자는 게 조 바이든 정부의 구상이다. 해외 전문가들은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게 이번 가격 급락을 유발했다고 분석했다. 디지털 자산운용사 엑소알파의 파트너 엘르 르 레스트는 최근 조정에 대해 “투기 세력을 줄이고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되는 건강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국제 암호화폐 가격은 현재 5만 3,00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3년 전 관료들의 말 몇 마디에 가격이 출렁이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암호화폐 시장이 과거와 달리 기관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기반을 다져왔기 때문이다. 유수의 글로벌 기업이 암호화폐를 비즈니스에 활용하고 있다. 테슬라는 현금 보유액의 7.7%에 달하는 15억 달러(약 1조 6,815억 원)를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지난달부터 테슬라는 비트코인 결제를 지원하고 있다. 페이팔은 20일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를 내놓았다. 페이팔의 간편 송금 서비스 벤모(Venmo) 플랫폼에서 암호화폐 거래를 할 수 있는 ‘크립토 온 벤모’ 서비스를 출시했다.

보수적인 뉴욕 월가도 암호화폐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17일 월가 대형 은행으로는 최초로 비트코인 펀드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골드만삭스도 같은 달 암호화폐 투자 상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2017년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가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말한 JP모건도 올해 초 “비트코인이 ‘대체 통화’로 금과 경쟁하면서 가장 주목받는 암호화폐가 되고 있다”며 “비트코인이 금과 비슷한 지위에 오를 경우 최고 14만 6,000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연이어 최근에는 고액 투자자를 대상으로 비트코인 펀드를 내놓는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경직된 접근을 놓고 ‘붉은 깃발법’을 떠올리기도 한다. 영국은 자동차 산업 등장기인 19세기에 마차 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의 최고 속도를 시속 3㎞로 제한하고 마차가 붉은 깃발을 꽂고 달리면 자동차가 그 뒤를 따라가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붉은 깃발법은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다. 혁신 금융을 강조하는 금융 당국이 현실에서는 전통적인 금융 산업의 시각에만 사로잡혀 암호화폐의 제도권 편입을 위한 노력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정부에서 규제한다고 막을 수 있는 자산이었으면 진작 막혔을 텐데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으로부터 파생된 새로운 기준”이라며 “뉴노멀(new normal)에 대응하는 방식은 기존과는 달라야 한다”고 꼬집었다.

/도예리·김정우 기자 yeri.do@decenter.kr

/도예리 기자 yeri.do@
도예리 기자
yeri.do@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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