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으로 다가온 ‘이더리움(ETH) 머지’는 머지(merge, 합병)라는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체인간 합병을 골자로 한다. 합병이 이뤄지는 두 체인은 지난 2020년 12월 이더리움 재단이 출시한 지분증명(PoS) 방식 합의 레이어 비콘체인(Beacon Chain)과 이더리움 메인넷이다. 기존에 병렬적으로 구동되던 두 개의 체인이 합병됨과 동시에 이더리움 메인넷의 합의 메커니즘이 비콘체인의 PoS로 대체된다. 즉 이더리움이 PoW 방식에서 PoS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더리움 머지는 지난 2015년 이더리움이 탄생한 이래 이더리움 재단이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숙원 사업이다. 최초의 블록체인 비트코인(BTC)과 달리 다양한 탈중앙화애플리케이션(DApp·디앱) 구동을 가능케 하는 스마트컨트랙트 플랫폼임을 내세운 이더리움의 가장 큰 과제는 확장성이었다. 이더리움 위에 수많은 디앱이 올라가고 이용자가 몰리면서 높아진 수수료와 느려진 처리 속도는 이더리움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더리움 재단은 확장성·보안성·지속가능성의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업그레이드를 진행해왔다. 이번 머지는 업그레이드의 핵심이다. 머지를 위한 마지막 업데이트는 ‘벨라트릭스(Bellatrix)’와 ‘파리(Paris)’의 두 단계를 거쳐 시행된다. 첫 번째 단계인 벨라트릭스는 지난 6일 진행됐고 현재는 마지막 업데이트 파리를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최종 난이도 값(TTD)가 58750000000000000000000을 도달하면 파리 단계가 시행된다. 이더리움 해시레이트에 따라 시기에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오는 20일 전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더리움의 합의 메커니즘이 PoS로 전환되면 ETH의 공급량은 크게 줄어든다. 채굴기의 연산력에 따라 블록 생성 우선권을 부여하는 PoW와 달리 PoS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스테이킹(예치)된 암호화폐 수량에 따라 우선권을 주기 때문에 기존에 채굴자에게 지급되던 신규 ETH 발행량이 90% 이상 대폭 감소한다. 빗썸경제연구소는 “수수료 소각분까지 감안하면 ETH 순공급량이 마이너스로 전환돼 ETH 잔액이 연간 1~2%씩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PoW 채굴기가 사용하던 막대한 양의 전력을 절약하는 효과도 있다. 씨티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머지 이후 이더리움의 에너지 소비량은 약 99.95% 가량 크게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더리움이 보다 친환경적인 블록체인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머지가 곧 이더리움 업그레이드 완료를 의미하진 않는다.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지난 7월 참석한 행사에서 “머지가 완료되면 이더리움의 최종 완성에 55% 정도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더리움 업그레이드 진행 수준은 이제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서지(The Surge)’ 업그레이드를 시작으로 ‘버지(The Verge)’, ‘퍼지(The Purge)’, ‘스프러지(The Splurge)’의 4가지 절차를 추가적으로 진행해야 이더리움의 로드맵이 완성된다. 이더리움 머지 이후 거래 수수료(가스비) 절감과 초당 거래 건수(TPS) 증가 등을 기대하는 일각의 오해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머지는 합의 메커니즘의 PoS 전환만을 이룰 뿐 네트워크의 용량이나 처리량을 늘리는 등의 확장성 개선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거래 처리 속도 향상은 머지 이후 진행될 서지 단계에서 이뤄질 예정인 샤딩(Sharding) 업데이트 이후에야 가능해진다. 초당 수십 건이었던 이더리움 TPS가 10만 TPS 수준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스비 감소를 위한 롤업(Rollup) 업그레이드도 머지 이후 진행된다. 비탈릭 부테린은 “롤업 업그레이드 이후엔 1~20달러 이상이었던 이더리움 가스비가 0.002달러에서 0.05달러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며 “수수료가 감소하면 탈중앙화 시스템 구축이 용이해지고 이더리움의 확장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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