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작동 원리를 몰라도 운전을 할 수 있듯 블록체인에 대한 깊은 이해 없어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의 엑시인피니티 열풍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지난 달 30일 제1회 필리핀 블록체인 위크(PBW)가 열린 마닐라 한 호텔에서 만난 도널드 림(Donald Lim) 필리핀 블록체인 협회장은 웹3 대중화를 전망하며 이같이 말했다. 도널드 림 협회장은 16년 전 필리핀 IMA(Internet and Mobile marketing Association)을 설립한 인물로, 현재는 디토 씨엠이 홀딩스(Dito CME Holdings)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고 있다. 이번에 PBW 조직위원회로 활동하며 초대 필리핀 블록체인 협회장으로 추대됐다.
림 협회장은 “인터넷이 등장했던 웹1, 소셜미디어가 주류가 됐던 웹2를 다 겪은 입장에서 웹3 확산 속도가 더 빠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필리핀 일대를 강타했던 플레이투언(P2E, Play-To-Eanr) 게임 엑시인피니티를 언급하며 “경비원, 택시 기사 등 블록체인을 모르는 사람들도 재밌게 게임을 했다”고 전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관련 서비스 상용화는 발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가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필리핀 블록체인 협회 설립을 추진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웹1, 웹2 분야의 기업가들이 웹3로 진입하는 걸 돕기 위해서다. 그는 “나 역시 블록체인에 대한 전문 지식이 많지 않은 웹2 사람”이라며 “기술을 몰라도 탈중앙화 등 기본 원칙을 이해하면 사업을 구상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전문 기술이 필요한 영역은 협회를 통해 조언을 구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많은 블록체인 행사를 가봤지만 웹3 업계 관계자들만 모여 있어 아쉬웠다”며 “이번 PBW에선 다양한 필드의 전문가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웹1, 웹2, 웹3로 구분된 장벽을 허물자는 취지다.
림 협회장은 필리핀이 아시아의 블록체인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산업이 발달한 만큼 블록체인 관련 서비스가 확산되는 데도 유리한 환경이란 설명이다. 필리핀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BPO 산업은 콜센터, 소프트웨어 개발 등 각종 업무의 과정을 위탁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BPO 산업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 여러 분야 산업과 연결돼 있기에 인프라 측면에서 확장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이어 “필리핀 사람은 영어를 잘하고, 인구 수도 많다”며 웹3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고 밝혔다. 지난 달 기준 필리핀 인구 수는 약 1억 1555만 명에 달한다.
FTX 파산 사태로 업계 전반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 블록체인 협회를 세운 이유를 묻자 림 협회장은 “어두울 때 일수록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헤매고 있을 때 불을 비춰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필리핀 블록체인 협회는 필리핀 정부가 공인한 협회”라며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게 협회가 있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 마닐라=도예리 기자
- yeri.do@decen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