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빗썸·코인원 등 국내 2·3위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를 잇따라 수사하며 상장피(Listing fee)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상장피는 암호화폐 발행사가 상장을 대가로 거래소에 지불하는 일종의 수수료다. 거래소가 상장을 대가로 돈을 받고 충분한 검증 없이 부실한 암호화폐를 상장시키면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업계 신뢰를 떨어뜨리는 고질적 문제로 지적됐지만, 당장 이를 제재할 마땅한 규제는 없는 상황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검찰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상장피 의혹에 칼을 빼들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13일 이 모 빗썸홀딩스 대표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 대표는 국내 기업이 발행한 일명 ‘김치코인’의 빗썸 상장을 대가로 상장피를 수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빗썸홀딩스는 빗썸 운영사 빗썸코리아의 대주주다. 검찰은 암호화폐 상장 청탁 목적으로 코인원 관계자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를 받는 상장 브로커 고 모씨도 지난 7일 구속기소했다. 관련해 차 모 코인원 대표도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상장피는 업계의 해묵은 논란거리다. 이번에는 개인이 상장피를 받은 혐의가 부각됐지만 기존에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법인 차원에서 상장피를 수수한 점이 이슈가 됐다. 그러나 거래소들은 이러한 논란이 일 때마다 프로젝트로부터 돈을 수취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상장피가 아닌 마케팅이나 운영, 또는 기술 비용이라고 반박했다. 서비스 지원에 따른 합당한 비용을 청구했다는 주장이다. 최근 상장피 논란에 휩싸인 빗썸도 공식 홈페이지에는 “빗썸코리아는 거래 지원을 담보로 한 어떠한 비용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다만 프로젝트별로 얼마를 받았는지, 어떤 명목으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상장피 명목으로 비용을 받더라도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상장피’가 문제라는 데 공감대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해당 법인을 현행법으로 규제하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권오훈 차앤권 파트너 변호사는 “상장피를 기업 차원에서 정식 서비스료로 받는 것은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볼 여지가 있어 처벌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강민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도 “민사적으로 비용 명목을 기술 개발 등으로 두면 문제 삼기 힘들다”고 전했다.
상장 브로커의 경우 행위에 따라 처벌 가능성은 열려있다. 기업이 받아야 할 돈을 개인이 받은 경우 배임 또는 횡령으로, 상장 권한이 없는 사람이 상장피를 수수한 경우에는 사기죄 등이 성립할 수 있다고 법조계는 분석했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상 가상자산사업자는 신고제로 운영이 되고 있는데, 영업 행위에 대한 규제를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가상자산 산업을 제도화하고 이해상충 등 영업 행위에 대한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관점에서 디지털 자산 기본법 등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예리 기자 yeri.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