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크립토닷컴이 거래소 코인 크로노스(CRO) 발행량을 돌연 3배 넘게 늘리면서 논란이 거세다. 가상자산 발행량 급증에 따른 투자자 피해가 예상되지만 탈중앙화 의사결정 방식을 통했다는 명목으로 거래소 유의종목 지정을 피했다. 블록체인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탈중앙화 운영 구조가 사실상 중앙화된 가상자산 발행사의 규제 회피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지적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거래소 업비트·빗썸·코인원·고팍스는 국내 5대 원화 거래소 협의체 닥사(DAXA) 공동 대응 차원에서 CRO 유의 촉구를 공지했다. CRO의 발행·유통량 증가가 통상적인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업비트 관계자는 "CRO의 경우 유통량 계획표 변경 제출 등에 따라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유통량 변경이 아닌 거버넌스 투표를 통한 발행량 증가에 따라 유통량이 늘어나는 상황이라 유의 촉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CRO는 검증인(밸리데이터)과 투자자(홀더) 등을 대상으로 한 운영(거버넌스) 투표를 통해 지난 2021년 소각된 700억 개의 CRO를 재발행하자는 안건을 졸속 통과시키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안건에 따르면 CRO 발행량은 기존 300억 개에서 1000억 개로 3배 이상 대폭 증가한다. 새로 발행된 CRO는 CRO 전략적 준비금 지갑으로 들어가 향후 10년간 점차적으로 시장에 유통된다.
대규모 물량이 시장에 풀리면서 가격 하방 압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 사이에선 반대 의견이 우세했지만 크립토닷컴이 운영하는 검증 노드들이 투표 종료 당일 '찬성'에 몰표를 던지면서 안건이 통과됐다. 민트스캔에 따르면 찬성표의 99.8%는 크립토닷컴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업계에선 "사실상 중앙화된 운영 구조를 통해 조작된 투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다만 CRO가 닥사 공동 유의종목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낮다. 유의 촉구를 유의종목 지정 가능성을 예고하는 사전 단계로 보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유의 촉구와 유의종목 지정 간 상관관계는 없다. 닥사 관계자는 "유의 촉구는 유의종목 지정 사유에 해당하진 않지만 투자자들이 알아야 할 중대 이슈가 발생할 경우 내리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즉 CRO의 발행량 증가 조치는 거래소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닥사는 계획되지 않은 가상자산 발행량 증가에 따른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 거래지원심사 공통 가이드라인에서 발행량 기준을 세워놨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가상자산이 백서·공시·재단 공개 자료 등과 달리 기존 발행량 이상으로 발행된 경우 가상자산 구조에 내재적인 위험이 있다고 보고 거래 지원을 금지한다. 자율 규제안인 만큼 강제성은 없지만 발행량 감시를 위해 최소한의 방지턱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거래소들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상장 유지 심사에서 이 기준에 미달하는 가상자산을 유의종목으로 지정하고 상장폐지 심사를 거친다. 업비트의 경우 각 재단으로부터 가상자산 유통량 계획표를 받아 이를 위반한 가상자산들을 유의종목으로 지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발행량을 한 번에 3배 이상 대폭 늘리는 CRO의 경우 정작 이 상폐 요건에 걸리지 않는다. CRO의 소각 물량 재발행은 계획된 발행·유통량 계획에서 벗어난 조치가 아닌 탈중앙화 운영 구조 하에서 투표를 통해 통과된 안건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업비트에 향후 유통량 변경 일정을 알리는 계획표도 제출하지 않았지만 이를 유의종목 지정 사유로 보진 않는다. 업비트 관계자는 "재단에 유통량 정보 제출을 요구하는 데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유통량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해당 가상자산을 유의종목으로 지정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시장에선 CRO가 일방적인 가상자산 추가 발행 통보를 탈중앙화된 의사결정으로 둔갑해 규제망을 피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크립토닷컴은 "크립토닷컴은 CRO와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지난 25일 크리스 마샬렉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하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AMA)' 자리를 열고 해당 논란을 해명했다.
그러나 이날 AMA에서도 CRO 추가 발행에 따른 가격 하락 가능성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며 투자자들의 비판이 일고 있다. 그는 이날 "2021년 CRO 소각은 방어적인 조치였고 당시 상황에선 적절했다"면서도 "올해 들어선 새 행정부는 가상자산에 친화적인 만큼 더욱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새로 발행된 CRO를 통해 크로노스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상위 5위권 블록체인으로 도약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후 6시 7분 코인마켓캡 기준 CRO는 전일 대비 5.02% 하락한 0.101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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