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암호화폐(가상화폐) 투자자는 300만 명(국회 정무위원회 자료 기준)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60%인 180만 명이 20·30세대다. 이들 중 일부는 ‘암호화폐 투자를 통해 처음으로 꿈을 가져봤다’고 호소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암호화폐 따위에 꿈을 거느냐’며 비판한다.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산업계 주장과 붕괴할 수 밖에 없는 사기라는 학자들의 반론이 팽팽히 맞선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가상통화는 돌덩어리’라고 표현이 나온 지 얼마 안돼 블록체인 기술을 육성하겠다는 공식 방침도 발표된다. 2018년 세밑 블록체인 이슈는 혼란과 충돌의 한 가운데에 있다.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는 이를 두고 “이게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라고 총평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이런 (혁신적인 변화를 갑작스레 맞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 대표는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이사 등과 함께 국내 블록체인 산업 1세대다. 어 대표가 이끄는 코인플러그는 지난 2013년 12월 국내에서 두 번째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설립했다. 블록체인 기술 관련 보유 특허 수는 세계에서 2번째다.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거래라는 두 분야에서 모두 선도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1일 성남시 분당구 코인플러그 사무실에서 디센터 취재진을 만나 “지금까지 우리 경제를 이끌었던 50~60대들은 실물경제를 기반으로 생각하고 경제를 성장시켜온 반면 암호화폐에 관심을 두고 있는 20~30대들은 디지털에 특화된 생각을 가진 디지털 경제의 원주민”이라며 “암호화폐를 계기로 실물경제와 디지털경제가 충돌하는 지점에 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 현재로서는 실물경제 패러다임의 힘이 세기 때문에 디지털 세대가 밀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성세대에 대한 진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어 대표는 “실물경제 세대들이 글로벌 경제의 움직임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해외 시각은 어떤지 등 블록체인을 좀 더 산업적 차원에서 파악해야 하는 데 지나치게 투기 현상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앞으로 50년을 살아갈 디지털 세대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거래소 폐쇄나 암호화폐는 돌덩어리다 같은 발언으로) 그냥 하지 말라고 하니 디지털 세대 입장에서는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 대표는 블록체인의 의미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인터넷은 모든 곳을 연결해주는 거미줄이다. 데이터와 정보의 자유를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그런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데이터는 누구도 보증하지 않고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어 믿을 수가 없다. 블록체인은 이 같은 인터넷 위에 신뢰 네트워크를 구성해준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네트워크 참가자들이 다 증명하고 검증된 데이터다 보니 약속이나 보증이 필요한 거래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뢰 네트워크의 힘은 막강하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와 은행은 선하다, 신뢰기관은 믿을 수 있다, 이런 전제로 상거래가 이뤄졌지만 블록체인이 만들어지면서 거래활동 당사자들끼리만 거래하는 경제 생태계가 돌아갈 수 있다”며 “앞으로 인터넷과 블록체인,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모든 온라인 비즈니스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뗄 수 없는 관계도 설명했다. 어 대표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는 암호화폐가 필요없다고들 하는데, 문제는 앞으로 모든 실물자산은 디지털 자산화된다는 점”이라며 “아파트를 예로 들면 나중에는 10억원 짜리 아파트를 10억원 어치 토큰으로 연계해 블록체인에 등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토큰화 된 상품을 거래하는 토크나이즈(Tokenize) 경제가 다가오고 있다”며 “이런 경제 체제에서는 퍼블럭 블록체인이든 프라이빗 블록체인 이든 반드시 디지털 토큰이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상화폐를 블록체인에서 기계적으로 분리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화폐라는 호칭에 몰두해 자산 증표로의 활용할 가능성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 가격이 외국보다 높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의 원인도 투기 자체보다 국내 법제와 가상화폐 시장의 구조에 있다. 그는 “한국은 갑자기 암호화폐 수요가 늘어났지만 정작 채굴업체가 없어 공급이 없고 외환관리법에 따라 해외에서 가상화폐를 사오기도 힘들다”며 “결국 공급이 따라주지 않으니 국내에서 가격이 치솟을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초기코인공개(ICO)를 전면 금지한 조치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ICO 금지와 블록체인 기술 육성은 상존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일까. 어 대표는 “ICO를 해야만 블록체인 기업이 많이 탄생할 수 있다”고 명확히 했다.
어 대표는 “정통 벤처캐피탈이 투자하려면 3년 내, 5년 내에는 어느 정도 승부가 나야 하는 산업이어야 하는데 블록체인은 기술도 생소한데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언제 산업이 상용화될지도 모르는 분야라 VC가 투자하기 쉽지 않다”며 “시기별로 나눠 소액으로 투자하는 전통 방식으로는 기업들이 버티다 쓰러질 수 있어 ICO가 대규모 블록체인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어 대표는 특히 “투자를 하는 곳이 없는데 블록체인 기업이 과연 나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정부에서 블록체인을 육성한다고 하는데, 정작 블록체인 기술을 사업화할 기업이 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 세계에서 한국산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어 대표는 “전 세계에서 ICO를 한 기업이 수백 개, 이를 통해 모인 돈이 수조 원인데 이 가운데 국내 기업은 몇 개가 있느냐”며 “ICO를 금지하니 블록체인 기업이 투자를 받기 어렵고 그러면 블록체인을 하겠다는 기업은 뭘 가지고 개발을 하고 사람을 모으고 회사를 꾸려가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까. 어 대표는 ICO의 제한적 허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과열된 분위기에서) ICO가 전면허용 되면 다단계 범죄 등이 더욱 기승을 부릴 우려도 배제하지 못하는 만큼 정부가 어느 정도 ICO를 제한하는 조치 자체가 잘못됐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무조건 막기보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처럼 클라우드펀딩의 형태로 인정하고 증권법에 위배되지 않으면 가이드라인에 따라 길을 터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이미 클라우드 펀딩 분야에 도입된 적격투자자 제도 등을 활용하는 방식 등이다.
거래소와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는 “암호화폐를 금융으로 편입시키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공적 금융 성격이 강한 국내 금융환경의 특성상 투자 실패를 정부가 떠안게 되는 부담이 크다”면서도 “(거래소 등) 기업들이 투자자 보호를 책임질 수 있도록 등록제든, 허가제든 규제를 하고 소비자 보호를 그 영역 안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계의 역할도 주문했다. 어 대표는 “이제는 블록체인을 증명해야 할 시점이 왔다”며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실제 결과로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고 했다. 어 대표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다. 최근 외부 강연은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는 그는 자체 거래소인 CPDAX의 해외 진출과 국내 여러 기업에 블록체인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한 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어 대표는 “전자정보 플랫폼이나 스마트시티 플랫폼, 보험사와의 연계, 커넥티드 카 프로젝트 등이 있다”며 “파일럿을 넘어 실생활에 어떻게 담을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흥록기자 rok@ 원재연인턴기자 wonjaeyeon@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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