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거래 및 다양한 정보들을 담은 ‘블록’을 ‘체인’처럼 연결하는 기술이다. 이에 이에 블록들이 연결될 수 있는 형태로 새로운 블록을 만드는 과정은 블록체인이 정상적으로 구동하기 위한 기본 전제다. 누가 블록을 만들까. 블록체인 붐과 함께 탄생한 새로운 직업, 블록을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마이너(Miner) 혹은 블록프로듀서(Block Producer·BP)다.
마이닝(mining·채굴)이란 개인이 만들어낸 데이터를 모아서 검증하고 블록을 만들어 보상을 얻는 행위를 말한다. 비트코인에서 블록은 일종의 퍼즐 풀기 작업을 거친 후 만들어진다. 마이너들은 단순반복 연산에 유용한 장비를 투입해 퍼즐 풀이에 나서며, 최초로 성공할 경우 비트코인을 보상을 받게 된다. 이같이 연산력을 투입해 거래의 정합성을 검증하고 블록을 생성하는 방식을 작업증명(PoW·Proof of Work) 방식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단순 연산에 적합한 그래픽카드(GPU)가 품귀 현상을 빚었던 것도 PoW 방식의 암호화폐 채굴에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블록체인의 블록 생성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BP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PoW 방식을 보완한 위임 지분 증명(DPos) 방식에서 블록을 생성하는 주체가 바로 BP다. 이 둘은 이름이 다른 만큼 업무의 성격이나 특징, 방향성에도 차이가 있다. 다만 블록 생성이라는 일이 과거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점차 기업화, 전문화된다는 점은 공통적인 추세다. 블록생성자는 이제 그 규모에 따라 하나의 직업일 수도, 동시에 여러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직군일 수도 있다.
◇ 조건 없이 누구나 채굴할 수 있다, 작업 증명 방식(PoW)의 마이너=
마이너는 블록체인의 탄생으로 생겨난 가장 초기 형태의 직업으로 손꼽힌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에서 마이너라는 직업이 등장한 시점을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했던 2013년 께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2013년부터 2015년 초까지는 비트코인 채굴이, 2014년 말부터는 이더리움을 비롯한 알트코인 채굴이 활성화됐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활동하는 마이너의 수나 시장규모는 아직 파악된 수치가 없으나 업계에서는 이미 암호화폐 채굴에 나서는 경우가 더 이상 드문 사례가 아닐 정도라는 점에 공감대를 갖추고 있다.
누가 마이너가 될 수 있을까. PoW 방식을 사용하는 블록체인은 누구라도 블록을 만들 수 있으며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누구든 채굴장비만 구하면 채굴에 도전할 수 있다. 최근에는 미국 대학 기숙사에서 이베이에서 학자금 대출 등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암호화폐 채굴기를 구매해 몰래 돌리는 바람에 전기료가 급등해 전전긍긍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다만 최근에는 이같이 개인이 채굴기를 소규모로 돌려 수익을 얻기는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 현직 마이너들의 설명이다. 현직 마이너들은 노동강도가 약하다는 점을 직업군의 강점으로 뽑았으나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라는 조건 때문에 마이너라는 직업에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대구시에서 채굴장을 운영하는 익명의 현직 마이너는 “채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뛰어들어서는 안된다”며 “(암호화폐)시장이 워낙 등락 폭이 크다 보니 하락장에는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큰 손실을 보고, 고철이 된 기계를 불태우는 경우도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작년 5월, 당시 기준 4만 원에 머무르던 이더리움이 한 달 새 50만 원까지 치솟으면서 국내 많은 이들이 마이닝 업계에 유입되었으나 계속되는 등락에 현재 많이 빠져나간 상태다.
이에 단순 채굴에만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현직 마이너들은 점차 대형화하면서 소형 마이너들로부터 채굴을 위탁받아 수수료 수익을 챙기는 식으로 수익원을 다변화하고 있다. 현재 가장 활발하게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코인은 이더리움이며 아직 상장되지 않은 코인들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미리 채굴하는 마이너들도 있다.
채굴은 인간이 아닌 기계를 돌리는 일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장비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장비에 따라 채굴은 크게 일반 그래픽카드(GPU)를 이용하는 그래픽 채굴과 채굴기 전문 제조업체 비트메인(Bitmain)에서 만드는 에이식(ASIC) 기기를 이용한 에이식 채굴로 나눌 수 있다. 그래픽채굴은 처음 그래픽카드를 구매할 때 단가가 비싸지만 단순 채굴이 아닌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채굴을 그만둘 때 시장에 적정 가격을 받고 팔 수 있다. 반면 채굴에 특화된 에이식 장비는 싸고 효율이 좋다는 장점이 있으나 각 코인별 장비가 다르다는 점, 또 새로운 장비가 나오면 효율의 편차가 커 기존 장비는 매매할 수도 없는 고철이 되어버린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마이너라는 직군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견해도 있었다. 채굴만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마이닝 풀이 다수 등장해 개인 마이너들의 컴퓨팅 파워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고 PoW방식을 사용하는 코인 자체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도 초까지 마이닝을 진행했던 이민현 머클라인(Merkline) COO는 “마이너들이 필요한 역할임은 확실하지만 마켓 사이즈로 따졌을 때 이만큼 광풍이 불정도로 마이너들이 필요할까를 생각해보면 아닐 수 있다”며 “이더리움이 플랫폼을 지향하면서 PoW에서 PoS로 전환하고 있고 앞으로 나올 플랫폼을 지향하는 체인들은 PoW를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마이너라는 직업군의 미래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 특정 자격을 만족하는 대표들만 채굴, 위임 지분 증명 방식(DPos)의 BP=
다양한 블록체인이 나오면서 블록생성자의 거래가 정당한지 여부를 검증하는 작업 중 가장 먼저 쓰이기 시작한 PoW방식은 채굴을 위한 연산력 투입이 커야하는 만큼 이에 비례해 전력 소모가 많은 특징있다. 기술적으로는 특정 세력이 전체 네트워크의 51%를 장악하면 검증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는 단점을 갖는다. PoW의 경우 가장 먼저 블록을 생성한 이에게만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에 따라 필연적으로 마이너들끼리 연산력 경쟁을 펼치게 되고 이는 결국 모두가 컴퓨팅 파워를 대량으로 투입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호화폐 발행사들은 PoS나 DPos와 같은 새로운 블록생성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EOS의 DPos 방식이 대표적이다. DPoS의 경우 모두가 경쟁해 블록을 생성하는 대신 선택받은 특정 노드, 즉 블록프로듀서들만 거래 내용을 검증하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에 투입 전력 낭비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DPos 방식을 취하고 있는 대표적인 코인으로는 이오스와 트론이다. BP의 개념은 DPos 방식의 대표 주자 이오스(EOS)와 함께 올해 초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같은 DPos 방식을 사용하는 트론(TRX)의 경우, BP와 동일한 역할을 하는 블록 생성자들을 슈퍼 대표(Super Representative·SR)라고 부른다.
채굴기를 사서 가동하기만 하면 되는 마이너와 달리 블록 생성자들은 대개 해당 블록체인에 발행한 코인 보유자들의 투표를 받아 선출된다. 이용자들의 호응을 얻어야 하는 만큼 BP들은 다양한 공약들을 내세우고 생태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이에 이오스 정도의 대형 블록체인 BP의 경우 한 두명이 활동하기는 어려운 단계며 전문 서비스 팀이나 기업이 BP로 활동한다. 이에 대형 BP는 그 자체가 직업이라기 보다 해외 커뮤니티 활동 등 마케팅, 서비스 기획, 개발 등을 아우르는 하나의 직군으로 성장했다.
이오스 BP로 활동중인 체인파트너스의 이오시스(EOSYS) 관계자는 “노드를 돌리는 주요 업무뿐만 아니라 토큰 홀더 들을 돕기 위한 툴킷과 교육 컨텐츠 개발과 같은 표를 받기 위한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론 메인넷 출범 당시 국내 트론 SR로 선발되었던 트론코리아 (Tron Korea) 역시 “중국 커뮤니티와 한국 트론 이용자들의 소통 창구 역할을 했다”는 등 노드 이상의 역할을 했다.
BP들은 마이너와 가장 큰 차이점으로 생태계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뽑았다. 마이너들은 생태계의 발전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으나 BP들은 토큰 홀더들로부터 증명 권한을 토큰 홀더들로부터 위임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생태계 내에서 그 책임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이오시스는 “BP의 사명 자체가 이오스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다”며 “꾸준히 이오스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활동해 온 결과 조금씩 BP순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트론 코리아 역시 “마이너가 좀 더 사업가에 가깝다면, SR(BP)은 정치인에 가깝기 때문에 토큰홀더들의 니즈에 좀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OS의 경우 현재 세계에서 408개의 BP 후보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이오시스를 필두로 아크로이오스, 이오서울, 이오스노드원, 헥슬란트 등 5~6개 팀이 활동하고 있다. 각 팀에는 약 5~10명 가량의 인력이 BP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
/민서연 인턴기자 minsy@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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