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하드포크 분열은 비트코인캐시가 지향하는 업그레이드 내용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로저 버 비트코인닷컴(Bitcoin.com) 대표와 우지한 비트메인(Bitmain) 창립자로 대표되는 비트코인ABC(Bitcoin ABC) 진영에서는 비트코인캐시가 사이드체인이나 다중체인으로 확장할 수 있는 프로토콜과 기본적인 스마트계약을 가능하게 하는 아토믹스왑 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비트코인의 초기 개발자 크레이그 라이트로 대표되는 비트코인SV(Satoshi’s Vision) 진영에서는 유통화폐로서 비트코인이라는 사토시의 비전과 맞지 않는다며 본래의 비트코인 구조로 돌아가는 동시에 트랜잭션을 더 담을 수 있도록 블록 크기를 128MB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V 진영의 크레이그 라이트는 이번 하드포크를 진행하며 “비트코인캐시는 분열하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바로 ‘리플레이 어택 방지 코드’가 있다.하드포크하면서 나오는 새로운 체인은 기존 체인과 동일한 알고리즘과 인증키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한쪽의 출금 정보를 가지고 다른 쪽에서도 코인을 출금할 수 있는 중복 출금이 가능해지는데, 이를 리플레이 어택(Replay Attack)이라고 한다. 이 공격을 막기 위해 하드포크 시 한쪽 체인은 리플레이 어택 방지 코드를 삽입한다.
크레이그 라이트는 “ABC 측에서 체인에 리플레이 어택 방지 코드를 삽입한다면 똑같은 코드를 삽입해서라도 체인 분리를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블록을 동시에 만들어도 더 긴 쪽이 메인으로 남는 블록체인의 특성때문에 하드포크 진행 시 다음 블록을 더 빠르게 생성해 더 긴 체인을 유지하는 쪽이 비트코인캐시의 메인 체인으로 남게 된다. 이는 곧바로 블록을 만드는 확률을 결정짓는 해시율 점유를 위한 ABC와 SV 간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코인댄스에 따르면 지난 1주일간 비트코인 캐시의 해시율은 SV 진영의 코인긱(Coingeek), SV 풀(SV pool), BMG 풀(BM pool)이 차지하는 비율이 56.7%로 압도적이었다. 크레이그 라이트는 강력한 해시율을 무기로 비트코인 캐시 ABC를 포함한 알트코인들을 엠티블록(Empty block)으로 공격하겠다고 선포했다. 엠티블록이란, 거래정보가 담기지 않은 채 생성되는 블록이다. ABC 측이 온전한 블록을 만들더라도 강력한 해시파워를 보유한 SV가 ABC의 블록체인에서 계속해서 엠티블록을 만들게 되면 체인의 신뢰도와 가치는 훼손된다.
크레이그 라이트의 공격적인 태도에 우지한 역시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캐시 생태계는 가짜 사토시를 몰아내야 한다”며 비트코인을 채굴하던 비트메인의 채굴기들까지 비트코인 캐시 해시파워 전쟁에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캐시는 블록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에 같은 채굴기로 효율적인 채굴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다시 크레이그 라이트는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우지한과 로저 버가) 비트코인을 판매한다면 가격은 2014년 수준으로 회귀할 것”이라며 비트코인 덤핑을 시사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듯 무수한 설전 속에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캐시를 포함한 전체 암호화폐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 시간으로 16일 오전 1시 40분, 하드포크가 시작됐다. 하드포크 전 마지막 블록은 SV 진영의 마이닝 풀에 의해서 채굴됐다. 그러나 압도적인 해시파워를 보였던 SV는 포크가 시작되자 ABC 측에 해시파워가 급격히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몇 시간 후 ABC 진영 로저 버의 비트코인 닷컴(Bitcoin.com)에서 하드포크 이후 첫 블록을 채굴했다. 하드포크 후 두 번째 블록 역시 비트코인 닷컴이 가져갔다. 우지한 비트메인 창업자는 “ABC진영의 첫 블록 채굴을 축하하며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네거티브가 없어질 것”이라는 트윗을 남겼다. 반면 이에 대해 SV 진영의 크레이그 라이트 또한 트위터를 통해 “해시파워 대결은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 경기”라면서 ABC 진영에게 “섣부른 승리를 예측하지 말라”고 맞섰다.
이번 하드포크의 결과로 두 진영이 분열이 될지, 혹은 결국 하나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거래소들과 투자자들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하드포크를 앞두고 바이낸스(Binance), 폴로니엑스(Ploniex), 오케이엑스(OKEx) 등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하드포크를 지원한다고 밝혔으며, 비트코인캐시 ABC와 비트코인캐시 SV의 선물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확정되지 않은 선물 시장을 연 거래소들은 본 선물거래가 굉장히 위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SV 진영의 토큰이 생기지 않고 소멸할 경우, 투자자들의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해 보인다. 시세를 나타내는 거래소들 기준도 모두 다르다. 하드포크 전 ABC와 SV, BCH 가격을 모두 표기하던 폴로니엑스는 ABC와 SV의 가격만을 보여주고 있고, 비트스탬프와 코인베이스, 코인넥스 등의 거래소는 비트코인 ABC의 가격을 비트코인캐시의 공식가격으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거래소인 빗썸과 업비트는 아직 비트코인캐시의 단일 가격으로 표기하고 있다.
하드포크가 진행된 지 12시간을 지나고 있으나 ABC 진영과 SV 진영 간의 해시파워 전쟁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비트코인캐시와 새롭게 생긴 토큰 모두 신뢰의 기반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중앙화라는 암호화폐의 기치와는 전혀 맞지 않게 개인들의 설전과 반목이 비트코인캐시의 미래를 결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클래식의 수석 개발자 토마스 잰더(Thomas Zander)는 “두 진영 모두 하드포크를 원하지만 왜 하드포크가 필요한지 논리적 근거를 대지 않는다”며 “게다가 양쪽 모두 생태계의 의견이나 타협 요구에는 귀를 완전히 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트코인 언리미티드의 수석 개발자 앤드루 스톤(Andrew Stone) 역시 “‘내 방식이 아니면 아무리 논리적이어도 변경 절대 불가’라며 맞서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협의의 본질이 기술과 최종 사용자의 선택이 아닌 힘과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 됐다는 슬픈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현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민서연기자 minsy@decenter.kr
- 민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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