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이 얼어붙을수록 빛을 발하는 존재가 있다. 일정 가격을 유지하는 스테이블코인(Stable Coin)이다. 대표적인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들이 올 한 해 속속 등장했고, 내년에도 그 인기는 이어질 전망이다.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당연 ‘일정 가격 유지’다. 목표는 같지만 방법은 제각각이다. 발행사가 직접 가격을 관리하기도 하고 자동화된 알고리즘이 가격을 안정화하기도 한다. 이 중에서도 메이커다오(Maker Dao)의 스테이블코인 다이(DAI)의 방식은 눈에 띈다. 코인 가격 유지를 위해 또 다른 코인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다이는 암호화폐 이더리움(ETH)을 담보로 한다. 사용자는 이더리움을 맡기고 다이를 생성할 수 있으며, 다이를 돌려주고 이더리움을 되찾을 수도 있다. 다이 가격도 이더리움 양을 통해 1달러 선으로 유지된다. 다이 가격이 1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더 많은 이더리움을 담보로 맡겨야 하므로 다이의 수요가 줄고, 다이의 공급량도 줄면서 가격이 다시 올라가는 방식이다. 반대로 다이 가격이 1달러 이상으로 올라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이를 생성할 것이므로 가격은 다시 떨어지게 된다. 수요공급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자동화된 시스템도 함께 마련됐다. 담보대비 생성 가능한 다이의 목표값을 조정, 다이 생성 시 맡겨야 할 이더리움의 수를 상황에 맞게 변경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가격 유지 방식에 대해 남두완 메이커다오 한국 대표는 “스테이블코인들 중 가장 안정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이더리움 가격 폭락 시 영향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시스템 자체가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담보를 잡도록 설계돼 있다”며 “이더리움 가격이 한 시간에 60%가 떨어져도 다이 가격 유지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이의 특별한 점은 가격 유지 방식뿐만이 아니다. 스테이블코인도 결국 암호화폐인 만큼, 블록체인의 기본인 탈중앙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 중앙화됐다는 비판을 받는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코인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달러 등 법정화폐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중앙기관이 가격 안정화에 나서야 한다. 이와 달리 다이 생태계의 거버넌스는 탈중앙화를 최대한 구현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다이 사용자들은 별도로 안정화 수수료(Stability fee)이자 투표에 사용되는 비용인 메이커(MKR)를 냄으로써 가격 안정화를 비롯한 다이 생태계의 여러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다이 시장이 활성화될수록 메이커의 가격도 올라갈 수 있으며, 실제로 메이커의 시가총액 순위는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다이의 거버넌스 구조는 메이커다오가 유명 벤처캐피탈(VC)들로부터 투자를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메이커를 소유하고 있음으로써 다이 생태계에 참여하고, 메이커 가격이 오르면 이익을 보는 것이다. 메이커다오는 앤드리스 호로위츠, 폴리체인 캐피탈 등 거물급 VC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남 대표는 “다이를 이더리움으로 다시 바꾸고자 할 때 메이커를 내는데, 이런 정책을 통해 가격 안정화를 좀 더 확실하게 하고 있다”며 “메이커는 일정량이 계속 소각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들고 있으면 가치가 올라가게 되고, VC들도 이런 점을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메이커를 갖고 있으면 생태계에도 직접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정화폐 연동 코인은 물론 알고리즘 기반 코인에 비해서도 거버넌스적으로 더 탈중앙화됐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이에게도 과제는 있다. 우선 이더리움 외에 담보로 삼을 만한 암호화폐를 찾아야 한다. 전체 이더리움의 1.5%를 담보로 잡고 있는 상황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남 대표는 “전체 이더리움의 1.5%가 다이의 담보로 사용되는 데다, 이더리움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암호화폐를 담보로 사용하려 한다”며 “그런데 이더리움보다 시가총액이 적은 암호화폐를 담보로 쓸 경우, 비중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어 고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시점에선 대안으로 금과 연동된 디직스다오(DigixDao)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밝혔다.
다이의 활용처를 넓히는 일도 남아 있다. 법정화폐를 대체하기보다는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디앱·DApp)에서 쓰이는 게 메이커다오 측 바람이다. 남 대표는 “다이는 탈중앙화 예측 플랫폼인 어거(Augur)처럼 토큰의 가치 변동성을 줄이고자 하는 디앱들을 공략 중”이라며 “진정한 탈중앙화를 바라는 디앱들이 많은데, 다이는 다른 스테이블코인보다 탈중앙화돼 있기 때문에 이런 바람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진출은 다이의 활용처를 넓히는 전략 중 하나다. 남 대표는 “해외에서는 유명 VC들의 투자를 받으며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었지만, 한국 시장에서의 인지도는 부족하다”며 “한국에선 아직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메이커다오는 추후 다이 가격을 원화에 맞추는 방안과 한국 지사 인력채용을 고려 중이다. 남 대표는 “내년에 커뮤니티매니저를 포함 3~4명 정도를 한국 지사에서 채용하려 한다”며 “현재 한국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사이드에 상장하는 등 활용처를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영·심두보기자 hyun@decenter.kr
-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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