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래소뿐 아니라 대부분의 중개인은 두 가지의 미션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거래 체결과 신뢰다. 고객은 중개인의 알선하는 제품 혹은 서비스를 믿고 산다. 중개인의 신뢰가 붕괴되면 소비자는 등을 돌린다. 원활한 거래의 기반이 신뢰이기 때문이다.
건전한 거래 문화 조성의 감시자인 규제당국은 이 신뢰 문제에 관여한다. 정보의 비대칭을 악용해 고객에게 피해를 입히는 가해자를 잡는 게 검찰의 역할이다. 검찰은 암호화폐 거래소가 유동성을 공급하는 행위가 고객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업비트의 입장은 완전히 반대다. 고객을 위한 조치였다는 게 거래소 입장이다.
◇유동성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나선 거래소= 우리나라 유가증권시장의 유동성은 어떻게 공급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업비트 사건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스템은 기존 증권 거래소의 구조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장기업은 증권회사와 ‘유동성 공급자(LP·Liquidity Provider) 계약’을 체결한다. 대신 증권회사는 상장기업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증권회사는 호가 스프레드가 3% 이내에서 상장기업과 함께 정한 비율 이상으로 괴리가 발생할 때 5분 이내로 해당 비율을 축소하기 위한 호가를 제출해야 한다. 이 경우 최소호가수량은 매매수량단위의 5배 이상이어야 한다.
위 구조를 암호화폐 시장에 대입해보자. 상장기업은 토큰 발행사이다. 증권회사의 역할은 여럿이 나눠 하고 있다. 발행사, 고빈도매매자, 암호화폐 거래소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존 증권 거래소가 유동성 공급에선 한발 물러서 있는 반면, 암호화폐 산업에선 암호화폐 거래소가 적극적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직접 발행사와 협의하고, 유동성을 공급해줄 수 있는 차익거래자 혹은 펀드들을 접촉한다.
오랜 기간 증권사에서 재직하다 암호화폐 관련 기업으로 이직한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당장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이를 위한 유동성 공급자 시장은 파편화되어 있고, 또한 규제나 자율협약도 없다”면서 “이런 상황 아래 지난해 말 토큰 수와 개인들의 거래량이 급격히 늘면서 유동성 공급이 급한 이슈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자기자본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아이디어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었던 부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비트는 2017년 10월 24일부터 서비스를 개시했다. 업비트가 밝힌 자전거래가 발생한 기간은 2017년 10월 24일부터 12월 14일까지다. 즉, 고객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거래량이 미미했던 시기다.
◇고객 편의를 위해서일까? 마케팅 수단일까?= 검찰은 업비트가 전산시스템에서 회원계정을 만들고 해당 계정에 가상화폐나 현금을 입고한 사실이 없음에도 1,221억원 상당의 암호화폐와 원화를 입고한 것처럼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비트는 이에 대해 ‘해당 절차를 생략했을 뿐, 유동성 공급은 회사 보유 실물 자산 내에서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검찰과 업비트의 공통된 점은 업비트가 거래소 내 거래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처음 업비트에 가입한 고객의 입장으로 가보자. 달아오른 암호화폐 시장에서 한몫 챙길 요량으로 가입을 한 고객은 즉시 원하는 가격에 사고파는 게 가장 큰 관심사다. 급등하는 시장에서 치고 빠지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즉, 많은 토큰이 상장되어 있을수록, 그 토큰의 거래량이 충분할수록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불장(Bull market)’이었다.
하지만 유동성 공급자의 개입을 최소화한 한국거래소와 달리 암호화폐 거래소는 유동성 공급을 시장 기능을 보완하는 것을 넘어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증권으로 치자면 시세조작”이라면서도 “암호화폐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마켓 메이킹이란 이름으로 관행화되어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행위에 대해 조 변호사는 “토큰을 사는 사람 입장에선 ‘매수세력이 있구나’라고 착각하고 추종 매수를 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동성 공급에 대한 ‘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단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도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량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좋은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분명 고객을 기망하는 측면은 있다”고 덧붙였다. 경계의 불분명함은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유동성 공급이란 명분 아래 펌프앤덤프(Pump & Dump)가 행해질 공산도 있다.
법조업계에선 이번 업비트 사건에 대한 1심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 안팎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불구속 기소이기 때문에 재판 기간의 제한은 없다.
/심두보기자 shim@decenter.kr
- 심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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