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블록체인을 플랫폼화한 이더리움은 수많은 개발자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모든 개발 코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이더리움의 ‘탈중앙화’ 정신에 따라 개발자 커뮤니티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이더리움 개발자들은 언어적 장벽 등으로 인해 글로벌 개발 커뮤니티와 활발히 소통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지난달 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간 개최된 ‘이드콘(Ethcon) 한국 2019’에는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모였다. 국내 이더리움 개발자들끼리 개발기를 공유하고, 연구 결과를 알리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그동안 이더리움 재단 주도로 열리는 국제 행사 ‘데브콘’이 있었지만, 커뮤니티 주도로 열린 개발자 이더리움 콘퍼런스는 이드콘이 처음이다.
행사는 블록체인 업계 종사자들끼리 모인 이드콘 한국 준비위원회가 이끌었다. 준비팀 구성원 20명은 모두 자원봉사 형태로 비영리 행사를 준비했다. 이더리움의 탈중앙화 정신을 반영해 특정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모든 행사 과정을 순수 후원금으로 투명하게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고충도 있었다. 하지만 첫 커뮤니티 주도 개발자 콘퍼런스라는 정체성은 확실했다.
이드콘 준비팀의 김희연 에어블록 사업개발담당과 류영훈 에피토미씨엘 프로덕트 매니저는 지난달 31일 디센터와의 인터뷰에서 “커뮤니티 주도인데다 비영리이다 보니 하나하나 다 직접 준비해야 했지만, 이더리움 재단과 해외 개발자 커뮤니티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며 이드콘 한국 개최 과정에서의 이모저모를 밝혔다.
이 같은 발표자 선정 방식 덕분에 이드콘 한국에선 디앱(DApp,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중학생도, 게임 디앱 서비스에 나섰다 실패한 팀도 자신만의 경험을 공유했다. 행사에 참석한 개발자들의 반응은 좋았다. 그동안 순수 개발기만을 공유하는 블록체인 콘퍼런스는 없었기 때문이다. 류영훈 매니저는 “행사 후 설문지를 통해 피드백을 받았는데, 회사 홍보가 적고 개발상으로 배울 수 있는 게 많아 유익했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며 “가장 평이 좋았던 세션은 엄지용 게임엑스코인 블록체인연구소장의 해시타임 락 콘트랙트 관련 발표”라고 전했다.
그러나 개발자가 아닌 참석자들에겐 다소 어려운 발표 내용이 많았다. 개발자 콘퍼런스이기는 하지만, 일반 참석자들을 이더리움 생태계로 유입시킬 수 있는 발표 세션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희연 사업개발담당은 “블록체인 업계 종사자 중에서도 비개발자한테는 발표 내용이 어려웠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이드콘 한국 2기 때는 이더리움 개발 진입장벽을 낮춰줄 수 있는 세션도 하나쯤 꾸리려고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행사가 임박한 상황에선 이 같은 의사결정 방식이 비효율적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준비팀은 진정한 탈중앙화 의사결정 방식을 실험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고 밝혔다. 김희연 사업개발담당은 “행사가 다가올수록 방식을 고수하기 힘들어지고,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를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공유하지 못하는 불편함도 있었다”면서도 “탈중앙화 실험 자체에 의의가 있고 모든 의사결정을 투표로 하는 것도 참신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류영훈 매니저도 “의사결정이 다소 느려진 건 사실이지만, (반대로) 모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탈중앙화는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준비팀은 DAO 방식 의사결정을 잘 해내는 데 필요한 팁을 전하기도 했다. 김희연 사업개발담당은 “DAO 방식을 지키면서도 결정 속도를 빨리 내려면 구성원 개개인이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해야 한다”며 “그래야 투표와 최종결정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류영훈 매니저도 “이드콘 1기 때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2기 준비팀에게는 개인 의사 표현을 더 장려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1기 준비위원회는 이드콘 한국 2기 준비팀을 꾸리는 데에도 도움을 줄 예정이다. 김희연 사업개발담당은 “이번 행사 땐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표할 수 있는 ‘라이트닝 토크’ 세션이 있었는데, 발표를 꺼리는 한국 문화에 다소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며 “다음 행사 땐 토크의 예시를 들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류영훈 매니저는 “발표 세션이 트랙 두 개로 나눠서 진행됐는데 두 트랙의 시간대가 맞지 않는 문제점도 있었고, 50개였던 세션 수가 너무 많았다는 평도 있었다”며 “이런 피드백을 반영해 발표 세션의 질을 더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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