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Role Playing Game·역할수행 게임)는 온라인 게임에서 가장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장르다. RPG는 고유의 세계관과 다양한 선택지를 유저에게 제공한다. 다른 장르보다 높은 자유도를 제공하며 유저는 게임 속으로 몰입한다. 하지만 이 같은 유저의 광범위한 활동 반경은 블록체인 기술에 있어선 제약이 된다. 그만큼 수많은 유저의 행동을 스마트 콘트랙트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인넷이 이더리움이라면 가스비 지출도 신경써야 한다. 많은 디앱 게임 개발사가 크립토 키티와 같은 유저 개입을 최소화하는 콜렉터형 혹은 방치형 게임을 주로 선보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기존 블록체인 플랫폼의 한계, 직접 엔진 개발에 나서다
나인코퍼레이션의 플라네타리움 팀은 재밌는 RPG 게임 디앱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가스비 등 비용 문제 때문에 쉽지 않았다. 호환성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게임 개발에 사용하는 언어와 메인넷에서 쓰는 언어가 달라 테스트를 한 번 하려고 해도 일을 두 번씩 해야 했다.
“이런 방식으론 도저히 좋은 게임을 개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체적인 게임 엔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플라네타리움의 서기준 대표는 엔진 개발 초기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서기준 대표는 ‘탈중앙성’때문에 블록체인을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 대표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노는 게 놀이의 본질”이라면서 “네트워크를 가져와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건 블록체인의 철학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잘만 활용하면 더 재밌는 놀이가 가능해질 것으로 그는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블록체인 게임만의 놀이는 바로 ‘모딩(Modding)’이다.
보통 일반 유저는 게임을 가볍게 즐긴다. 하지만 코어 유저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한다.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3’ 유저에 의해 제작된 유즈맵 시리즈 ‘DOTA’는 아예 하나의 새로운 게임으로 성장했다. 최근 유행하는 ‘오토체스’도 일종의 모딩이다.
서기준 대표는 이 같은 모딩이 블록체인의 하드포크와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버넌스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에서 새로운 규칙(rule)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기존 중앙 서버를 이용하던 일반 게임에선 즐길 수 없는 블록체인 게임만의 콘텐츠”라고 말했다.
플라네타리움 팀은 자체 게임 엔진에서 구동하는 RPG 게임 ‘나인 크로니클’도 만들었다. 게임 엔진 회사가 인하우스 개발팀을 꾸려 자체 게임을 출시한 거다. 사업을 총괄하는 남유정 COO는 “제대로 된 엔진을 만들기 위해선 게임을 직접 만들어 구동해야 한다”며 “실제로 게임을 돌려보니 엔진만 만들 때 미처 알지 못했던 문제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체 엔진 게임의 장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유저 타겟 범위를 넓히고 진입 장벽을 낮췄다는 점이다. 기존 이더리움이나 이오스 기반의 게임 디앱은 암호화폐를 소유한 사람들을 잠재적 유저로 보았다. 적어도 한 번 이상 블록체인 기술을 접해봤고, 지갑을 보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게임 서비스가 제공된다. 반면 나인 크로니클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 UX뿐만 아니라 CG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블록체인 게임인지 일반 게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수준’이 이 팀의 목표다.
두 번째는 메인넷의 제약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가스비나 스테이킹 비용이 발생하지 않아 게임사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세계관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게 됐다. RPG 게임이 재밌는 이유는 유저의 개입과 판단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플라네타리움 팀은 이 같은 기술적인 자유도가 게임의 재미를 높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나인 크로니클에서는 다양한 아이템 조합법이 등장한다. 장비에는 고유 스킬이 붙어있고, 몬스터의 속성도 제각각이다.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선 치밀한 전략이 필수다. 일반 RPG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시스템들이 블록체인 게임으로 구현되었다.
플라네타리움이 제공하는 게임 엔진 ‘립플래닛’은 오픈소스 0.3버전까지 공개돼 있다. 이번 해 안으로 1.0 정식 버전을 선보이는 게 목표다. 현재는 립플래닛 엔진을 활용해 게임을 운영할 게임 파트너사를 만나고 있다. 남 COO는 “단순히 많은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보다 탈중앙화 게임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팀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나인 크로니클도 곧 클로즈베타(CBT)를 통해 유저를 모집할 예정이다. CBT 기간에 참여한 유저를 대상으로 보상도 제공된다. 서 대표는 “게이머에게 친화적인 탈중앙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플라네타리움의 미션”이라며 “유저와 개발사가 서로 즐길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확 낮추겠다”고 말했다.
/조재석기자 cho@decenter.kr
- 조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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