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은 기존의 작업증명(PoW, Proof of Work) 합의 알고리즘을 지분증명(PoS, Proof of Stake)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컴퓨터의 계산능력(컴퓨팅 파워)을 기준으로 합의하는 작업증명의 경우 높은 컴퓨팅 파워를 지닌 노드가 네트워크를 장악할 수 있다. 반면 지분증명의 경우 지분, 즉 암호화폐를 기준으로 합의하기 때문에 특정 노드가 네트워크를 장악하기 어렵다. 높은 컴퓨팅 파워를 갖는 것보다 상당량의 암호화폐를 갖는 게 훨씬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트워크의 보안이 향상되며, 이더리움이 PoS 기반의 ‘이더리움 2.0’을 준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더리움이 2.0 출시를 미루는 동안 PoS를 쓰는 다른 블록체인이 먼저 등장했다. 코스모스나 테조스 등이 대표적이다. PoS 기반 네트워크에서 노드들은 보유한 암호화폐를 지분으로 고정하고 보상을 받는 ‘스테이킹(Staking)’을 한다. 암호화폐 보유자들은 노드들에게 암호화폐를 위임하고 노드들이 받는 보상을 나눈다.
최근 이 스테이킹도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스테이킹으로 보상을 얻는 행위 자체를 금융상품으로 보고, 스테이킹이 곧 디파이의 일종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스테이킹이 곧 디파이라는 아이디어는 스테이킹을 통해 얻는 보상이 일종의 ‘이자’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코스모스에선 네트워크 운영을 담당하는 노드들을 검증인(Validator)이라고 하며 현재 총 100팀의 검증인이 있다. 코스모스 암호화폐인 아톰(ATOM)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검증인들에게 ATOM을 위임하고, 검증인들이 노드로서 받는 보상의 일정 비율을 배당받는다. 이 때 이 일정 비율의 보상을 이자처럼 간주한다.
이는 탈중앙화 네트워크 운영을 위해 보유한 암호화폐를 예치하고, 이자를 받는 것이므로 디파이의 일종이다. 단 이자를 받기 위해선 100팀의 검증인들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완전한 탈중앙화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상품은 아니다. 위 벤 다이어그램에서 2번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다만 스테이킹 보상이 이자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으므로, 앞으로도 스테이킹이 디파이의 일종이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또 스테이킹에 쓰인 암호화폐를 이용해 파생상품을 만들면 이 역시 디파이에 속한다. 스테이킹에 쓰이는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네트워크 유지를 위해 이용되는 코인이므로 락업(Lock Up)되는데, 이를 파생상품화하면 락업된 암호화폐를 유동화하는 금융상품이 된다. 스테이킹 대행업체 ‘스테이크피시(Stake.Fish)’의 김준수 사업 매니저는 “탈중앙화 네트워크 유지에 기여하는 코인들을 유동화하는 것이므로, 중앙화된 주체 없이 자산을 유동화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위 벤다이어그램에서 3번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코스모스 해커톤 ‘핵아톰(HackATOM)’ 에서 등장했다. ‘핵아톰 서울’의 우승 프로젝트와 ‘핵아톰 베를린’의 우승 프로젝트 모두 스테이킹된 ATOM을 유동화해 디파이를 구현하는 프로젝트다.
핵아톰 베를린의 우승 프로젝트인 ‘위임 바우처(Delegation Voucher)’는 ATOM을 위임하는 위임자(일반 ATOM 보유자)와 ATOM을 위임받는 검증인 사이에 ‘검증인 풀(Validator Pool)’을 둔다. 검증인 풀은 위임자들로부터 ATOM을 위임받고 이를 개별 검증인에게 재위임한다. 그리고 위임자들에게는 2ATOM 당 1개의 바우처를 발급한다. 위임자들은 이 바우처를 사고팔 수 있다.
기존에는 위임자들이 보유한 ATOM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위임한 ATOM은 락업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ATOM을 위임한 뒤 바우처를 발급받아 거래하면 위임한 ATOM, 즉 스테이킹에 쓰인 암호화폐를 유동화하는 셈이다. 핵아톰 서울의 우승 프로젝트인 ‘bATOM’도 위임한 ATOM에 대해 ATOM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bATOM을 발급한다. 일반 위임자들은 bATOM을 다양한 금융상품에 활용할 수 있다.
그동안 스테이킹에 의해 유지되는 PoS 기반 블록체인과 디파이는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핵아톰 서울 우승 팀인 ‘Nonce A’의 김재원 씨는 “PoS 기반 블록체인에선 보유한 암호화폐를 스테이킹하는 것만으로도 수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보유한 암호화폐를 디파이 상품에 활용할 만한 유인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반대로 보유한 암호화폐를 스테이킹하지 않고 디파이 상품에 활용하면, 스테이킹에 의해 유지되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보안이 흔들릴 수 있다”며 또 다른 문제점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스테이킹과 디파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코스모스 해커톤 우승 프로젝트들이 실현된다면 스테이킹이 디파이에 활용될 여지가 더 커진다. 김준수 매니저는 “스테이킹된 코인이 유동화되면 더 다양한 디파이 파생상품을 만들 수 있다”며 “스테이킹된 코인을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게 그 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 새로 나오는 블록체인 플랫폼 대부분이 PoS 기반이고 이더리움도 PoS로 전환될 것이므로 앞으로 스테이킹과 디파이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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