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부터 국내 가상자산사업자(VASP)는 가상자산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가입할 보험 상품이 없는 상황이다. 가상자산의 가격 변동성으로 해킹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리스크 산정이 어렵고 관련 통계도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일정 부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5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메리츠화재)는 현재 가상자산 관련 보험이 없다. 보험 상품을 출시하기 위해선 리스크 검증과 손해율 예측을 위한 경험 통계가 필요한데, 가상자산은 가격 변동이 심하고 해외 사례도 적어 상품을 만들기 어렵다는 게 손보사들의 입장이다. KB손해보험 관계자는 “보험은 보험료 및 보험금 책정이 모두 과거 통계를 근거로 이뤄진다”며 “통계 없이 상품을 내기엔 리스크가 크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오는 7월 시행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라 국내 가상자산사업자는 해킹 등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거나 자체적으로 준비금을 적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올해 주시하는 부분 중 하나가 가상자산 보험이지만 관련 상품이 나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가상자산 보험은) 의무 보험이지만 통계가 없어 개별 보험사가 개발하지 못한다”며 “위험률이 계산되지 않으면 보험개발원에서 보험사를 소집해 협업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앞둔 지난 2021년 중대재해보험 출시 과정에서 사업자의 벌금, 과태료 보장 여부를 두고 보험개발원, 보험업계가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보험개발원에서도 가상자산 보험 관련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보험사끼리 (가상자산 보험) 수요에 대한 공감과 소통의 필요성이 제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카카오페이가 가상자산거래소가 해킹됐을 때 최대 1조 원까지 손실을 보장하는 보험을 국내 최초로 준비 중이지만 업계에선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험 상품이 하나밖에 없으면 가상자산사업자가 보험에 가입할 때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기 어려워서다. 김민수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 대표는 “보험 상품이 최소 두 개는 있어야 비교해보고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리스크 산정·담보 설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금융 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손보사 임원은 “리스크가 크고 애매한 경우 국가가 일정 부분까지 재정을 투여하는 경우도 있다”며 “해킹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금융 당국이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가상자산) 보험 출시와 관련해 (보험)업계와 얘기를 나눴다”며 “진행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업계는 가상자산 보험 상품이 출시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업계의 수요가 있으면 (가상자산 보험) 상품이 나올 것”이라며 “보험이 나오지 않으면 (가상자산사업자는) 일단 준비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VASP는 핫월렛에 보관된 가상자산 가치의 5% 이상을 보상 한도로 정해 보험에 가입하거나 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 최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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