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시스템이 자회사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의 블록체인 사업 부문을 인도네시아 리포그룹에 넘겼다. 블록체인에 대한 한화 그룹 3세들의 적극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자 매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화시스템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세운 사무소의 운영을 이어가기로 했다. 블록체인 사업을 직접 전개하며 쓴 맛을 봤지만 관련해 유망 기업 발굴은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은 지난 5일 피티 프리마 센토사 자야바디(PT PRIMA SENTOSA JAYAABADI)에 블록체인 사업 부문을 양도한다고 공시했다. 해당 부문 대상 인력 5명과 관련 기술 특허 등 양수인 측과 합의에 따른 자산 일부를 매각하기로 했다. 양도 예정 일자는 오는 2025년 3월 31일로, 양도가액은 82억 9140만 원이다.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은 한화시스템의 100% 자회사로 지난 2021년 설립됐다. 한화생명에서 사업 양도를 거쳐 한화시스템 자회사로 출범했다. 이준섭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 대표는 한화생명 출신이다. 기타 비상무이사 2명, 감사 1명도 한화생명 관계자다.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은 긱이코노미 시장을 노린 요긱,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 초점을 둔 어랏 등 등 관련 플랫폼을 잇따라 내놨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176억 3391만 원, 당기순손실은 196억 5356만 원으로 집계됐다. 적자 폭이 증가하자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블록체인 부문을 매각하게 됐다.
그동안 한화 그룹 3세들이 블록체인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행보다. 장남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지난 2022년 미국에서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 등 복수의 글로벌 가상자산 전문 투자사와 만나 이들이 운용하는 펀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한화시스템은 김 부회장의 전폭적 관심 아래 한화시스템은 샌프란시스코에 디지털 플랫폼 사업 확장을 목적으로 사무소를 세웠다(관련 기사). 샌프란시스코는 가상자산 벤처캐피탈(VC)과 소통하기 쉽고, 혁신 스타트업이 몰려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그룹의 금융계열사를 이끌어 온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도 블록체인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지난 2018년 중국 보아오포럼 ‘글로벌 블록체인 생태계의 현재와 미래’ 세션에 참석해 블록체인 생태계 육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블록체인 사업을 완전히 접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블록체인 사업 재편 및 재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한 사무소도 운영을 계속한다. 관련 유망 기업을 발굴하며 블록체인 업계 동향을 꾸준히 살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관계자는 “아직 대외적으로 공개할 만한 포트폴리오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사업을 양수한 피티 프리마 센토사 자야바디는 인도네시아 재계 6위인 리포그룹의 자회사다. 리포그룹은 한화생명과 연이 깊다. 지난해 한화생명은 리포그룹 산하 리포손해보험을 인수했다. 올해 4월에는 리포그룹 노부은행 지분 40%를 매입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리포그룹 자회사가 한화생명과 협력해 블록체인 사업을 전개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한화생명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한화생명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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